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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아침을 깨우는 주방, 당신의 ‘로망’은?

질문하는 집: 주방
오롯이 내게 집중할 시간 주는 주방
무질서 속 질서 마련하는 비법은
테마 색 정하고 분위기는 조명으로

1. 상부장 없이 말끔하게 정돈된 주방. 별집 제공

1. 상부장 없이 말끔하게 정돈된 주방. 별집 제공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직업, 나이, 취향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나와 공간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오랜 짝꿍을 마주한 것처럼 금세 들뜬 목소리가 된다. 특히 집을 볼 때 주방을 유심히 살피는 손님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주방은 집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공간이자 에너지를 충전하는 유쾌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어려서부터 주방에서 혼자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당시에 내가 만든 음식을 맛봤던 사람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요리를 썩 잘했던 건 아닌 것 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결과보다는 요리하는 과정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적어도 하루에 한끼는 빵을 먹어야 기운을 차릴 정도로 빵을 좋아해, 몇해 전 덜컥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가 좋아하는 빵을 갓 구운 상태로 먹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이상하리만치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날에도 몇시간이고 빵을 만들고 나면 절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피로가 풀렸다. 요리하는 시간이야말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그래서 언제고 장소를 독차지한 채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방은 나에게 특별한 장소다.

로망과도 같은 주방을 우리 집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주방은 항시 깔끔하고 정갈함이 유지되는 아름다운 주방의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다소 어수선해 보일지라도 주방에 들어서면 요리라는 창작 활동이 하고 싶어지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져야 한다. 냄비와 프라이팬같이 자주 사용하는 조리도구는 천장이나 벽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으면 좋겠고, 생활감이 느껴지는 양념통이나 소스통은 눈에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으면 좋겠다. 또 면적은 소박해도 좋으니 눈높이에 창 하나쯤은 나 있었으면 좋겠다. 창밖으로 녹색 풍경까지 볼 수 있길 바라는 건 좀 과한 욕심이겠지만 슬쩍 로망 리스트에 얹어본다. 사실 어질러진 주방의 모습은 잡지나 방송에 잘 담기지 않는데, 나의 로망과도 같은 주방이 자주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어 몇년째 구독 중이다. 바로 북유럽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일본 회사 ‘호쿠오, 구라시노도구텐’(北欧, 暮らしの道具店·북유럽, 생활 도구점)의 유튜브로, 그중에서도 아침 풍경을 담은 ‘모닝 루틴’(Morning Routine) 편을 즐겨 본다. 영상에서는 어김없이 누군가의 아침 일상이 펼쳐지는데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요즘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는 소피아의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다. 멋스러운 제빵 도구를 이용해 손수 식사 빵을 만들고, 빵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근처 호숫가에서 아침 수영을 즐기다 오는 그의 리드미컬한 여름 아침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나와 같이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주방을 선호하지만 지인을 자주 초대하는 사람에게는 주방과 식당이 독립되어 있는 구조의 집을 추천한다. 독립형의 경우 정리되지 않은 주방의 모습을 손님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요리할 필요가 없고, 식당으로 전달되는 소리와 냄새, 연기를 차단할 수 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손님을 배려해 주방과 식당의 분위기를 다르게 가져갈 수도 있다. 물론 독립형은 일체형에 비해 가사 동선이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세미 오픈형 주방(가벽을 높게 세우거나 가벽 일부를 오픈해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든 구조)이라면 이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거다.
2. 일본 생활용품 판매 회사 ‘호쿠오, 구라시노도구텐’ 유튜브에 등장하는 소피아씨의 주방. 유튜브 화면 갈무리

2. 일본 생활용품 판매 회사 ‘호쿠오, 구라시노도구텐’ 유튜브에 등장하는 소피아씨의 주방. 유튜브 화면 갈무리

식사와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식당의 분위기도 주방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성껏 요리를 했는데 음식을 맛있게 먹을 공간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우울해지지 않을까? 어떤 음식점에 가면 식사를 끝냈음에도 조금 더 머물다 가고 싶은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있다. 식사를 마친 나의 지인들도 우리 집에서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무드를 조성해야 한다. 이때 효과적인 것이 펜던트 조명이다. 체인이나 줄을 이용해 천장에 매다는 방식의 펜던트 조명은 조명의 위치가 낮은 편이라 사람들이 자연스레 조명 아래로 몸을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식사를 하는 사이 친밀감이 배가되면서 서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주의할 점은 앉아 있는 사람의 눈에 전구가 잘 보이지 않도록 적정한 높이에 조명을 설치해야 하고, 눈부심을 가져오지 않는 디자인을 택해야 한다. 또한 색온도는 따뜻한 계열의 3000~3800K를 사용하자.

집 어딘가 자신만의 장소

혹시라도 앞서 밝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주방의 모습을 보고, 설거지가 쌓여 있는 지저분한 주방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그 오해를 풀고 싶다. 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지 않을 뿐 주방 청결에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이란 걸 굳이 밝혀둔다. 조리 도구를 수납장에 숨겨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 쓰기보다는, 바로바로 찾아 쓸 수 있도록 진열해 두는 성향이라 주방의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나름의 비결도 있다. 예를 들어 주방의 테마 색상을 정해두는데,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수납 가구는 흰색으로, 내구성이 중요한 조리 도구와 랙은 실버(스틸)로, 이동 가능한 가전제품이나 도기류는 가급적 블랙으로 통일하는 식이다. 또는 간결한 인상을 주기 위해 전자제품의 브랜드를 통일하기도 한다. 만약 요리책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상황이라면 주방에 멋진 책장을 하나 들여보자. 책장 위엔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스피커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집을 생각한다>의 저자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말한다. 매일 생활하는 집 어딘가에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만드는 것, 혹은 그런 장소를 찾아내고자 시도하는 것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즐거움 중에서도 꽤나 큰 의미를 차지한다고. 나에게는 주방이 바로 그런 공간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이 원고 작업이 끝나는 대로 요술가방(제빵을 위한 모든 도구가 담긴 큰 가방)을 꺼내 들고 주방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글·사진 전명희 별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