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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저항의 역사와 함께한 일렉트릭 기타


`반항과 해방, 표현의 자유`.

일렉트릭 기타가 젊음의 악기로 여겨진다면 그 이유의 8할은 아마 이러한 인상 때문일 것이다.

증폭되는 전자음처럼 일련의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확대돼 떠오른다. 예컨대 블루스 기타리스트 비비킹. 일렉트릭 기타가 그의 손에 쥐어지면 천의무봉의 세계가 펼쳐진다. 비탄과 시름, 절망과 절규의 사운드가 폭발하면서 듣는 이의 심금을 후벼 판다.

비틀스는 어떤가. 이들이 튕기는 일렉트릭 기타 음은 서정적 팝송에 불멸의 가능성을 싣는 전령이다. 음색은 깊어지고, 화음은 더 풍성해진다. 6현·4옥타브 전자 악기의 힘이다. 일렉트릭 기타는 생각보다 나이가 적지 않다. 발명가 조지 브리드가 디자인 특허를 최초로 얻어낸 해가 1890년. 그 뒤로 시장에 처음 출시된 게 1928~1929년이었으니, 어언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이 말인즉슨, 20세기 문화사의 한자리를 일렉트릭 기타가 지배한다는 소리다.

1920년대 숱한 기타리스트에게는 공통된 열망이 하나 있었다. 더 큰 소리를 내고 싶다는 욕망, 부유층 응접실과 거실에서 나와 대형 댄스홀 등으로 저변을 넓혀 보겠다는 바람이다. 전자시대 도래와 맞물려 이 소망은 빠르게 현실이 됐다. 기타리스트 조지 비첨의 기여로 최초의 일렉트릭 기타 `프라잉팬`이 출시된 것이다. `굉음의 혁명` 그 시작이었다.

"연주자들과 악기가 몇 십 년에 걸쳐 발전하면서 놀라운 소리가 가능해졌다. 피드백과 디스토션에 힘입어 일렉트릭 기타는 원자폭탄, 폭격기, 중장비 돌아가는 불길한 소리를 모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수정처럼 맑은 톤과 아른거리는 텍스처도 만들어낼 수 있어서 생생한 꿈의 묘사가 가능했다. 전례 없는 이런 표현 범위 덕분에, 일렉트릭 기타는 탄생 바탕이 됐던 핫 재즈와 하와이 음악에서 얼터너티브 록, 하드 록, 헤비메탈, 모던 컨트리, 포스트모던 예술 음악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음악적 장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떠안게 됐다."

이 모든 걸 보여주고자 전설의 기타리스트와 기타들이 줄지어 소환된다. 이를테면 세계 최초의 일렉트릭 기타 영웅 찰리 크리스천과 그의 애마 깁슨 `ES-150`, 컨트리 음악계 거장 쳇 앳킨스와 그의 그레치 기타, 블루스맨 프레디 킹과 깁슨 레스 폴 골드탑,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과 그의 연주로 유명해진 12현 기타, 1960년대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총아 지미 헨드릭스와 그의 1968년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등.

일렉트릭 기타의 진가는 `음악적 혁신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는 게 중요하다. 정치와 예술, 경제와 문화 전반으로까지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예컨대 일렉트릭 기타의 요란한 금속음은 20세기 초 인종 통합의 대의를 알린 상징체였다. 1960년대에는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대중 저항 매체였으며 목소리였다.

요컨대 `굉음의 혁명`은 기타 애호가를 넘어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저자가 쓰고 있듯이 "기타를 연주하지 않든, 열광적인 음악 팬이든, 가끔 듣는 청자이든, 그 사이렌의 노랫소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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