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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자의 죽음에 통곡했다, 아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우리는 계속 타인의 삶과 나의 미래를 상상해야만 조금 나은 미래로 건너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계속 타인의 삶과 나의 미래를 상상해야만 조금 나은 미래로 건너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결혼을 해야겠다. 사랑이 하고 싶어. 너무 외로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갑자기는 아니고.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고양이 한 마리와 단둘이 사는 지금의 단출한 삶이 만족스럽지만, 한번씩 ‘결혼병’이 도진다. 갑자기 부는 봄바람에 장범준의 아무 노래나 귓가에 스치면, 누구라도 붙잡고 심장이 설렘으로 쪼그라드는 걸 좀 느껴보고 싶다. 결혼 뒤 불안이 사라지고 우울증이 치료됐다는 연예인의 인터뷰를 봐도 그렇다. 혹은 나와 비슷한 모양새의 삶을 꾸리던 친구가 결혼 뒤 네모반듯한 아파트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빛 사진 같은 걸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내게는 친구 관계가 최우선인데, 연애 중인 친구에게는 내가 차등인 것을 확인할 때 등등…. 별 이상한 이유로 불시에 병증이 도진다. 혹은 고독을 부채질하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때, 나는 그런 생각에 빠진다. 혼자는 이제 싫어! 물론 연애든 결혼이든 상대가 있어야 하는 거지 혼자선 영혼결혼식 외에는 시도할 수 없기에 ‘혼자가 싫어 병’이 도졌다고 하여 청첩장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잠시 울렁울렁하다가 네**판이나 미*넷에서 ‘결혼하고 망한 썰’ 같은 걸 읽으면 병증이 씻은 듯 낫는다. 실연을 당했고 월세도 밀렸고… 자신이 비혼주의자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어쩌다 보니 자발적 비혼 상태인 다수는 이 병에 가끔 걸렸다 빠져나온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의 멜랑콜리한 상태. 때론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충만한 가정생활을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좋은’과 ‘충만한’ 모두 모호한 표현이다). 지금이 너무 불안하고, 미래를 확신할 수 없고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질 때 특히 이런 환상에 빠진다. 연애한다고, 결혼한다고 고독이 사라지는 게 아니란 걸 너무 잘 알면서도 그렇다. 어떡해. 우리 앞 건물에 사건 났나봐. 어느 날 친구가 창문 너머의 빌라 사진을 찍어 보냈다. 옥탑방으로 난 좁은 계단으로 수사대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시체가 나온 사건인지 현장 감식반이라고 쓰인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수사 드라마에서만 봤던 풍경이 창문 앞에 펼쳐지자 친구는 무섭다며 내게 연락을 해왔다. 이런 사건이 좀처럼 없는 조용한 주택가에 전세를 얻느라 무리해 대출까지 받았던 친구는 며칠 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다. 1층에 사는 동네 마당발 아저씨의 설명에 의하면, 앞 건물 옥탑방에 살던 40대 비혼 여성이 시체로 발견됐고, 경찰 조사 결과 자살로 사건이 종결됐다고 한다. 이야기를 전한 사람에 의하면 죽은 그는 몇 달 전 실연을 당했고, 월세도 4개월가량 밀려 있었다고 한다. 내 이웃도 아닌, 친구의 동네 주민이었던 모르는 여자의 죽음.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날 밤 나는 술에 취해 엉엉 울고 말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고양이를 세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아무도 데려가지 않아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데려갔대.” 고양이를 키우고, 최근에 연인과 이별을 했으며 몇 달간 월세를 내지 못한 여자의 죽음. 내 이웃도 아니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여자의 죽음이 이상하게 내가 아는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 고양이와 나 홀로 살며, 종종 우울에 빠지는 사람. 거울을 볼 때마다 어딘지 지친 눈으로 입꼬리를 애써 올려보는 사람.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산 사람에 의해 해석될 뿐이다. 연인과의 이별이 죽음과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고 그 삶에는 훨씬 복잡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 40대 비혼 여성의 죽음은 ‘실연당해 나쁜 선택을 한 참 안된 일’로 해석되는 것이다. 울적한 마음으로 여느 때처럼 혼술을 하며, 음악을 켰는데 함께 사는 고양이가 폴짝 식탁 위로 올라와 내 팔에 얼굴을 비비며 없던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 털이 너무 보드라워서 술김에 소리 내 울고 말았다. 회사에서 억울할 때, 일이 생각처럼 안 풀려서 울고 싶을 때 고양이가 충분한 위로가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보드랍고 따뜻한 털 있는 생명체도 그에게는 별 위로가 되지 못했구나. 아니, 작은 위로가 되었을지라도 그보다 큰 슬픔이 마음을 잠식했구나.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고, 건너건너 전해 들은 몇 개의 정보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알 것 같았다. 때론 고양이도, 일의 성취도, 친구와의 통화도, 현재의 나를 지탱하지 못한다. 한밤 고요한 내 방에 있을 때 고립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나,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나, 아무도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는 나.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결국 자기 원가족에게 돌아간다. 그런 이상한 상념에 사로잡혀 우울감에 깊숙이 빠져드는 시간이 매일 조금씩 길어지다가 완전히 잠식당하고 마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형체 없는 불안과 싸운다. 명복을 빌며 나의 경우를 상상해봤다 혼자 있을 때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고 고백하자, 혼자 살다가 다시 부모님과 합가한 친구가 말했다. “엄마 아빠랑 살면 그런 게 장점이자 단점이야. 기분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냐’는 질문 듣기 싫어서 별일 없는 척 연기해야 하거든. 근데 애써 연기하다 보면 또 진짜 기분이 나아지기도 해. 물론 그래서 피곤할 때가 더 많지만.” 혼자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기분을 연기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시간이 생기면 ‘나’를 중심으로 복잡다단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월급은 몇 년간 그대로인데 월세는 매해 높아지고, 생계를 이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나만 혼자 남으면 어쩌지. 나이가 들어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뿌리를 내려 불안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세끼 식사를 예쁜 접시에 담아 잘 챙겨 먹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하고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일을 찾아서 하고 약속을 만들어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고 자꾸 일상에 즐거운 이벤트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내가 ‘혼자’가 아니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삶의 결정권을 나 혼자 쥐고 있는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확인한다. ‘나’라는 가족원에게 계속 즐거운 사건을 만들어줘야만 불안으로부터 영혼을 지킬 수 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너야말로 죽은 사람에 대해 뭘 안다고 청승이냐. 감정 이입하지 말고 그렇게 결혼하고 싶으면 얼른 해라,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몇몇은 그런 댓글을 달지도 모르겠다. 그 말이 맞다. 혼자라서 느끼는 불안이 결혼으로 해결될 것 같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결혼하면 된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비혼과 결혼은 완결된 형태가 아니며 ‘네, 아니요’로 간단히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들도 똑같은 불안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냥 혼자 사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부쳐, 명복을 빌며 나의 경우를 상상해봤다고, 우리는 계속 타인의 삶과 나의 미래를 상상해야만 조금 나은 미래로 건너갈 수 있다고 여기 써두는 것이다. 늘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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