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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포지션'은 왜 가수로서의 자신감이 떨어졌다 말했나


[스쿨오브락-132] 최근 가수이자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임재욱은 일반인 여성과 늦은 결혼을 했다. 한참동안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던 그는 최근 예능을 통해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가수 활동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사장 역할에 충실하던 그였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컬로서의 떨어진 자신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사업에 치중하다 요즘엔 노래하는 것에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쪽에 있다는 것을 계속 느끼고 싶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것 같다.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졌다"고 말했다. 전성기 시대 포지션을 기억하는 `올드 팬` 입장에서는 놀랄 만한 멘트였다. 포지션은 일본 가요를 번안한 `I LOVE YOU’ 등의 달달한 발라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데뷔 당시 임재욱이 속했던 그룹 포지션의 색깔은 사뭇 달랐다. 발라드에 방점이 찍혀 있었으되 록발라드 가수의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어려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다. 1996년 `후회없는 사랑`으로 데뷔했던 포지션은 그 시대 대표적인 노래 잘하는 가수로 불렸다. 훤칠한 외모 못지않게 준수한 가창력을 인정받았던 팀이었다. 이번 스쿨오브락에서는 지금 청소년들이 잘 모르는 포지션의 초기 시절과 전성기, 오늘까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포지션은 피노키오 출신 안정훈과 솔로앨범을 준비하던 임재욱이 1995년 만나 결성된 팀이다. 색깔은 애절한 록발라드. 안정훈은 방송 무대에서 기타를 잡았고, 임재욱은 마이크를 잡았다. 데뷔곡 `후회없는 사랑`과 후속곡인 `너에게`는 가요차트 10위권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중박 이상의 히트를 했다. 1990년대 중후반은 다양한 록발라드 가수가 나와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다. 1994년 데뷔한 가수 김정민은 1995년 `슬픈 언약식`으로 대박 스토리를 쓴다. 탁월한 가창력을 유명했던 최재훈 역시 1994년 데뷔를 해서 인기를 끌었다. 당시 록발라드란 장르는 `노래를 썩 잘하는 가수`만이 선택할 수 있는 장르였다. 립싱크가 만연했던 시절이었지만 록발라드 가수들은 웬만하면 라이브 무대를 고집하는 `자존심`을 보이기도 했다. 포지션 역시 마찬가지였다.

데뷔곡 `후회없는 사랑`도 어려운 노래였지만 후속곡 `너에게`는 사실 일반인이 부를 수 없는 노래였다.

아무 말 않고선 그냥

떠나버린 널

그렇게 쉽게 용서하긴

힘들었었지

하지만 넌

후회하고 있다는 걸

나의 느낌으로

알 수가 있어

너에게 내가

힘이 되줄께

더 이상 아픔을

혼자 느끼지 말아줘

내가 곁에 있을께

그래 난 울지 않겠어~

후략

이 노래 후렴부인 `너에게 내가 힘이 되줄께`부터는 극악의 난도를 자랑한다. `더 이상 아픔을 혼자` 부분의 `자`는 3옥타브 도까지 음이 치솟는다. 뒷부분 `느끼지 말아줘` 부분의 `느`와 `끼`, `아`에도 모두 3옥타브 도의 음이 찍혀 있다. 이 당시 포지션은 동시대 활동했던 최재훈과 함께 `나만 혼자부를 수 있는 록발라드`를 부르는 대표적인 고음 가수였다. 두 가수 모두 애절한 음색과 서정적인 멜로디로 감정이입할 노래를 찾던 동시대 청소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부모님 몰래 간 노래방에서 포지션의 노래를 원키로 소화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입부부터 잔뜩 힘이 걸린 성대로 노래를 소화하던 중고등학생들은 클라이맥스 절정까지 치솟은 음을 감당하지 못해 전혀 아름답지 않은 목소리로 소리만 꽥꽥 부르다 쉬어버린 목을 뒤로한 채 고개를 숙이고 취소 버튼을 누르곤 했다.

1997년 나온 포지션 두 번째 앨범 역시 `보컬리스트`로의 임재욱 활용에 방점을 둔 작품이었다. `Remember`와 `Summertime’이 히트한 이번 앨범은 임재욱의 수려한 가창력을 살리기 위한 시도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Remember`에는 빼곡하게 찍혀 있는 `2옥타브 라`음을 껌 씹듯이 쉽게 소화하는 임재욱 목소리가 실려 있다. `Smmertime’은 임재욱이 느끼는 보컬리스트로의 자신감이 뿜뿜 배어 나오는 곡이다.

저 하얀 구름이 까맣게 그을린 네 모습

더욱더 널 눈부시게 하네

부서지는 저 파도곁에 설탕같은 저 하얀 백사장

칵테일 한 잔에 빨개진 네 얼굴 너무나도 아름다웠어

황홀한 저녁 노을에 널 닮은 바다 향기에

너의 속삭임과 너의 달콤한 입맞춤에 취해 버렸어

우리 함께한 이 여름 Summer Time.

널 영원히 사랑해 I love you.

이대로 영원히 춤추며 노래해. 모닥불이 꺼질 아침까지

여기 즐거운 바닷가 Summer Time.

널 영원히 사랑해. Forever

끝없이 펼쳐진 여름 밤 하늘에 수많은 저 별들처럼, 너를 사랑해

후략

이 노래는 포지션 노래중 가장 흥겨운 리듬이 가미된 곡이다. 발라드를 넘어 빠른 리듬의 록까지도 포지션이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곡이다. 임재욱은 여기서 후렴부 3옥타브 도#에 달하는 진성 샤우팅을 힘하나 안들이고 질러대는 역량을 과시했다. 이 곡은 2옥타브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찍힌 음표를 매우 빠른 리듬으로 불러내야 하기 때문에 난도가 매우 높은 곡이라 할 수 있다. 타고난 음역이 매우 높더라도 생목으로 불러대면 성대에 상당한 피로가 쌓이는 곡이다. 임재욱은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안정된 성구전환과 성대를 얇게 붙이는 테크닉을 통해 매우 안정적으로 곡을 소화하는 가창력을 선보인다. 타고난 미성에만 의존해 곡을 소화했으면 이 정도의 해석을 보여주진 못했을 것이다.

1998년 나온 3집에서는 `편지`가 가장 주목을 받았다. 이 곡 역시 임재욱의 높은 음역대를 부각시킨 곡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편지를 비롯해 후회없는 사랑 등 포지션의 대표곡은 모두 기타리스트 안정훈이 작곡을 맡았다. 그들은 임재욱의 음색이 매우 아름답고 독특했으며 탁월하다는 장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가진 무기를 전면에 부각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편지`역시 후반부 `2옥타브 라#`의 음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일반이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완곡하기는 불가능한 곡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포지션은 보컬의 가창력과 곡의 아름다움은 인정받았으되 대중적인 흥행 측면에서 `대박`이 나지는 못했다. 1998년 나온 3집은 냉정하게 말해 2집만큼의 인기도 얻지 못했다. 그리고 1999년 안정훈은 팀에서 나가고 포지션은 임재욱 혼자만의 팀으로 남게 된다.

이후 임재욱은 본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당시 임재욱은 인터뷰 등을 통해 `더 이상 어려운 노래를 부르는 이미지로 남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4집 앨범의 타이틀곡은 일본 노래를 번안한 `Blue Day’였다. 음역대를 낮춰 훨씬 편안해진 임재욱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 노래 최고음은 `2옥타브 솔`에 그친다. 노래방에서 일반인 남성들이 따라부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상당한 히트를 했다.

여기서 임재욱은 자신감을 찾은 듯하다. 곧바로 `I Love You`가 실린 4.5집을 내놓는다. 이 곡 역시 일본의 인기가요를 번안한 곡이었다. 그리고 이 곡은 방송사 음악프로그램 순위 1위를 휩쓸며 공전의 히트를 친다. 이 노래는 최고음이 `2옥타브 라#`이었지만 임재욱은 이 곡에서 `2옥타브 라`이상의 음표는 전부 가성으로 처리했다. 진성 최고음은 `2옥타브 솔`에 그쳐 따라 부르기 쉬운 편이었다. 보컬의 난도를 낮추고 한층 편안한 매력을 과시한 점이 적중한 것이다.

2002년 나온 5집의 `마지막 약속` 2007년 나온 `하루`에서도 비슷한 행보가 이어졌다. 사실 2002년 이후 국내에서의 임재욱 활동은 점차 희미해졌다. 임재욱은 이 시기를 전후해 일본 활동 타진에 적극 나선다. 단순히 일본 가요를 번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일본에서 승부를 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일본 가요를 들여와 한국에 소개하는 것과 일본어로 일본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이 당시 임재욱은 "일본 관객들은 노래의 디테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가수가 애드립으로 노래를 소화하는 것보다 정석으로 원곡의 맛을 그대로 살려주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였다. 2013년 임재욱은 6년여 만에 새 앨범을 내지만 이 당시 많이 달라진 가요계에서 임재욱이 설 자리는 넓지 않았다.

이후 임재욱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에 손대며 가수의 삶보다는 사업가의 삶을 살게 된다.

최근 예능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여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이 가득했다. 그가 얘기한 `자신감의 상실`은 가수로서의 긴 공백기가 가져온 일종의 `슬럼프`일 가능성이 높다. 오랜 기간 가수로의 삶을 포기했던 임창정은 복귀 이후 더 탁월해진 가창력을 뽐내고 있다. 결혼에 골인한 임재욱 역시 훨씬 깊어진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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