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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朝鮮칼럼 The Column] 비둘기의 집단 기억과 한국 정치

자유·비밀·보통선거로 당선된 文 대통령
자유와 개인의 번영 대신 南北 함께 잘살자는 건 대한민국과의 계약 위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중국 충칭(重慶)에 다녀온 지인이 들려준 비둘기 상인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 해가 어스름한 저녁 충칭 시장의 비둘기 장수가 팔고 남은 비둘기를 모조리 날려버리더라고 했다. 그 광경이 의아해서 묻자, 집에 가면 비둘기들이 먼저 새장에 들어와 있으니 굳이 들고 갈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하는 이 여유로운 상인은 그래서 귀갓길이 늘 가볍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비둘기 위에는 중국 상인이 있는 셈이다.

사회나 집단이 어떤 사건을 기억하는 힘을 '집단 기억'이라고 한다. 개인이 겪은 기억들의 조각이 거대한 집단의 기억으로 환원되어 제도와 관습을 바꾸고 문화를 만들어간다.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표상되는 집단 기억은 논변을 통해 우위를 겨루기도 하고, 편의에 따라 왜곡되기도 한다. 각종 기념관을 짓거나, 상벌을 내리거나, 새로 생길 지폐에 누구 얼굴을 새겨 넣을까 결정하는 모든 것이 집단 기억의 되새김질로 가능하다. 귀소본능만 있을 뿐 가족, 친구들이 하나둘 팔려나가는 현실을 이해하지도, 기억하지도, 전수하지도 못하는 비둘기는, 그래서 떼를 지어 다니지만 사회적 동물로 분류되지 않는다.

요즘처럼 나라가 다시 낡은 세계사 속으로 기어들어 간 것 같은 때가 또 있을까 싶다. 광화문 언저리는 해방 직후 분위기를 닮았고, 중국 상하이에서는 아직 임시정부가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죽은 녹두장군이 죽창가를 부르고 안중근은 손가락을 자르며 항일한다.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주어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한반도'가 된 지 오래고, 국경도, 분단선도, 체제도 넘어선 남북 경제 공동체로 번영을 이루겠다는 청사진만 넘실댄다. 지금 정부는 밑도 끝도 없이 '함께 잘살자'만 외친다. 해방 직후 공산주의자들도 '새 민주 조선의 건설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의 완전한 추방, 1일 8시간 노동의 실현, 국가 재원으로 의무교육 실현' 같은 강령을 선포했다.

일본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다는 '평화 경제'엔 어떤 디테일도 액션 플랜도 없다. 대통령 말대로 완도의 소녀가 남포에서 창업해서 몽골과 시베리아로 물건을 팔아 부자가 된다는 그림에는 휴전선과 핵무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돈과 사람이 휴전선을 넘으려면 통행료를 내야 할 것이다. 핵무기를 눈앞에 흔들며 거액을 요구할 수도 있고, 러시아에서 판 돈을 남쪽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게 사회주의 경제다. 남쪽의 창업가가 '평화 경제'를 통해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는지, 또 사회주의 독재 체제를 왜 우리가 보장해야 하며, 그게 가능은 한지 묻고 싶을 뿐이다.

8·15 경축사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언급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번영 대신 '남과 북이' '함께' 잘살자는 건 자유·비밀·보통선거로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켜 준 대한민국과 한 계약 위반이다. 그 자유·비밀·보통선거를 이루고 이만큼 잘살게 되기까지 그동안 대한민국이, 미국과 연합군이, 생면부지 이방인들이 흘린 피와 땀이 산하에 넘친다. 요즘 각종 의혹의 한가운데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처세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이를 필요로 하는 지금 정부가 문제다. 그의 사노맹 전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현재형으로 부끄러움 없이 국회 청문회장 문턱에서 거만하게 대한민국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살아온 궤적을 보면 물질적 공명주의자에 불과한 그가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것도 이상하지만, 학자도 아니고(학자의 언어를 쓰지 않으니) 정치인도 아닌(스스로 아니라고 하니) 괴이한 이력을 갖고, 이뤄놓은 업적 하나 없는 그가 중용되고 승승장구하는 지금 정부의 정체가 나는 궁금하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지만, 생각이 없고 자유가 없으니 내일 장마당에서 팔려나갈 자기 운명을 모른다. '나라를 왼통 들어 재덤이 시체덤이로 만들었던 6·25'를 돌아보며 함석헌은 일찍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그 백성을 그는 씨알이라고 불렀다. 씨알은 하나다. 개인이다. 개인으로 날갯짓을 자유롭게 해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71년 전, 우리는 처음으로 자유를 배웠고, 서툴지만 그 토대 위에 대한민국을 세웠다. 지금의 정부는 그 서 을 조롱하며, 엉뚱한 곳에 공을 들여 안보가 요동치게 하고 있다. 자유롭게 나가려는 원심력과, 관습과 무지의 구심력이 지금처럼 치열하게 대립한 적이 또 있었던가. 몽매했던 과거와 창공 같은 미래 사이에서 선택은 오롯이 국민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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