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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스포츠] “흔들린 시민구단 광주, 반석 위에 올려놓고 가겠다”

최만희 광주 FC 신임대표가 지난 4일 홈구장인 광주축구전용경기장 라커룸에서 입단 기념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 구단이 창단한 2011년부터 2년간 초대 감독을 지낸 최 대표는 그 사이 내부 비위 사태를 겪은 광주에 대표로 부임하며 9년만에 귀환했다. 광주 FC 제공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고민이 많아요. 고통스럽기도 하고 허허.” 국민일보와 통화한 지난 18일, 최만희(64) 광주 FC 신임대표의 목소리는 다소 힘이 빠져 있었다. 대표 자리에 앉은 지 2주밖에 안 됐지만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외부에서 기사로만 상황을 알다가 직접 와서 보니 불완전한 게 많네요. 제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거라도 팀에 도움 드리고 마무리를 해야죠.”

지난 4일 최 대표의 부임은 광주 구단 혁신안의 하나였다. 광주 구단은 지난해 구단 사무국장과 선수운영팀장의 허위수당 문제가 불거진 끝에 광주시의 감사를 받았다. 감사 결과 구단 공금을 유흥주점에서 사용하고 개인 화환을 구단 돈으로 보내는 등 수억 원대에 이르는 12개 비위가 드러났다. 광주시 보조금, 즉 세금 없이는 운영할 수 없는 시민구단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반 기업이라면 진작 해당자들에게 징계를 내렸겠지만, 고려할 게 많은 시민구단에서는 문제가 간단치 않았다.

초대 감독을 지낸 최 대표에게 광주는 약 9년 만에 찾은 고향이다. 당시에도 광주 구단은 직원들 비위 탓에 팀 전체가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선수단이 잔디도 없이 맨땅에서 훈련하고, 식단 관리는커녕 근처 음식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어쩌면 현 사태는 그때의 데자뷔다. 최 대표는 “솔직히 대표 부임 제안을 수락한 건 당시 감독으로서 바꿀 수 없었던 부분을 해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그때는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이 많다”고 말을 아꼈다.

감독에서 행정가로… 산전수전 축구 인생


K리그 올드팬들에게 최만희라는 이름은 대개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익숙하다. 대학 시절까지 선수로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그는 지금은 작고한 대학 시절 은사의 조언으로 지도자에 입문했다. 풍생고에서 11년 가까이 학생들을 지도하며 낸 호성적 덕에 16세 이하 대표팀을 맡았고, 1991년에는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에서 남북 단일팀 코치를 맡는 귀한 경험도 했다.

그가 2001년까지 전북 현대에서 감독을 하며 들어 올린 FA컵은 현재 명문으로 발돋움한 전북의 역사상 첫 우승컵이다.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컵을 든 김도훈 감독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최진철 감독도 당시 그의 제자였다. 전주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그의 말투에는 전남 서부의 억센 사투리와 전북 특유의 둥글둥글한 억양이 한 데 섞여 있다.

고향인 광주와의 인연도 꾸준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담당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4강 신화에 조연 역할도 했다. 다만 감독을 하면서 보낸 2년은 최 대표에게 좋지만은 않은 기억이다. 한때 이승기 김동섭 박기동 김호남 등 젊은 선수단을 이끌고 선두권으로 도약하기도 했지만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기엔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결국 창단 2년차, 승강제가 시행된 첫해 강등을 맞는 불명예를 안고 물러났다. 이후 그는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 책임자로 일하다 부산 아이파크 대표를 맡아 2018년까지 팀을 운영했다.

오랜 축구 인생 동안 최 대표는 K리그 구단들의 흥망성쇠를 지도자로서, 또 행정가로서 현장에서 목격했다. 최 대표는 “부산 구단 대표 시절에도 시민구단 대구 FC를 잘 이끈 조광래 단장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야구로 유명한 대구에서 축구를 더 인기 종목으로 만든 건 대단한 성과”라면서 “감독으로 있던 시절 막 완주군으로부터 봉동 훈련장 부지를 빌리던 신생팀 전북도 지금은 지역 내 최고 인기팀이 됐다. 광주에서도 그런 사례를 모델 삼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걱정 해주는 건 팬 뿐… 외면 말아달라”

최만희 대표가 광주 FC 초대감독 시절인 2011년 당시 홈구장이던 광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아온 홈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확성기로 직접 인사를 하고 있다. 광주 FC 제공

최 대표가 광주 구단에 돌아온 건 우연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말 광주시 축구협회장에 입후보한 일이 지역 언론에 보도됐고, 이를 본 광주시에서 최 대표에게 대표를 맡아달라 연락을 해왔다. 최 대표는 “협회에서 주로 하는 생활체육 업무와 광주 구단을 연결지으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면서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지난달 최 대표는 협회장에 당선됐다. 비상근직이라 광주 구단 대표도 겸직할 수 있다.

최 대표의 부임 전까지 광주 구단은 감사를 받은 뒤 공식 발표 전에 결과가 조금씩 보도되면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광주시가 주도한 새 감독 선임 과정도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감사에서 함께 드러난 기성용의 아버지 기영옥 전 단장의 공금 유용 사건이 비위 해당 직원들보다도 더 화제가 된 것 또한 사태 정리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금은 구단과 무관해진 기 전 단장이 더 주목을 받으면서, 정작 구단에 남아 비위를 저질러온 이들이 어떤 처분을 받을지에는 세간의 관심이 줄었다.

어려운 와중에도 최 대표는 다음 주 개최 예정인 이사회 안건을 준비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쏟고 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선수단이 구단의 최우선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단의 엔진은 선수단이다. 직원들은 배터리에 가깝다”면서 “선수들에게 가장 좋은 훈련 환경, 감독에게는 좋은 지도 환경을 갖춰주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이는 최 대표가 9년 전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엉망인 구단을 향해 쏘아붙였던 직언과도 같은 얘기다.

최 대표는 구단 대표자로서뿐 아니라 광주시 축구협회장으로서 지역사회와 프로구단과의 시너지 효과를 구상하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 잉글랜드 FA컵에서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와 맞붙은 지역 아마추어팀 마린 FC의 사례를 꼽았다. 최 대표는 “조그만 시골에서 팬들의 애정이 없다면 어떻게 팀이 운영되고 있겠나”라면서 “구단이 먼저 팬들에게 현안을 설명하고 가깝게 다가갔기 때문에 팬들이 이번처럼 코로나19 와중에도 가상티켓을 사주는 등 팀을 아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등돌린 팬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보면 팬들이 마음에 상처 입는 게 당연하다”면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정과 투혼으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을 위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 걱정해달라. 그게 애정을 가진 팀이 잘되는 길”이라고 했다. 이어 “팬들이 아니라면 아무도 구단을 걱정해주지 않는다”면서 “경기장에서 잘한 건 박수를 쳐주고, 못한 건 그때마다 꼬집어달라”고 부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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