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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고레에다 감독이 보내는 ‘러브레터’

◇키키 키린의 말/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이지수 옮김/368쪽·1만8000원·마음산책
일본의 국민 여배우 키키 키린(왼쪽)과 함께 여섯 편의 영화를 찍은 거장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자는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키린 씨 말의 일부를 이렇게 활자로 남긴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으리라 자부한다”고 말한다. 마음산책 제공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59)의 팬이라면 배우 키키 키린의 얼굴이 익숙할 것이다. 키키는 ‘걸어도 걸어도’(2008년)를 시작으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년),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년) 등 여섯 편의 고레에다 영화에 출연했다. ‘어느 가족’(2018년)에선 한 가족의 할머니 역할을 맡아 투병 중 열연을 펼쳤다. 이 영화는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18년 키키는 75세로 별세했다. 그를 추억하는 이는 여전히 많다. 고레에다도 그중 한 명이다. 고레에다는 키키와 생전에 인터뷰한 뒤 잡지에 연재한 글을 묶어 그의 사후에 책을 냈다. 책엔 일상적으로 키키와 나누었던 대화도 들어있다. 키키에 대한 고레에다의 애정 어린 생각도 곳곳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은 나에게 이제는 수신되지 않는 ‘연애편지’일 것”이라고 고백한다.

고레에다와 키키에겐 통하는 것이 있었다. 두 사람의 출발점이 영화가 아니라 TV라는 점 때문이다. 키키는 TV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다. 고레에다도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TV 방송 제작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작품들은 일상을 주제로 했다. 별것 없는 서사와 평범한 연기로 일상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키키는 “특별한 사건이 없으면 드라마가 아니다, 영화가 아니다, 하는 착각이 드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키키는 고레에다의 작품에서 가족을 챙기는 따뜻한 어머니 역할을 주로 맡았다. 사실 키키는 젊었을 때부터 가식 없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했다.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와 배우의 불륜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런 키키의 성격은 고레에다와의 대화에도 묻어난다. 인터뷰 중 키키는 고레에다에게 “(여배우를 고르는 기준에) ‘여자로서’라는 건 있어요?” “(여배우에게) 반하는 경우는?”이라고 물으며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키키는 질문에 답할 때도 말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이 오랫동안 연기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인품이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나의 작품을 남기자거나 예술 작품이라거나, 그런 사고방식이 없거든”이라고 연기에 대한 지론도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키키가 오랫동안 대중에게 사랑받은 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일상을 재현하는 연기 때문일 것이다. 키키는 감독보다 더 연출가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본다. 그런 키키에게 고레에다는 “함께 있으면 ‘제대로 된 감독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존경을 표시한다. 키키는 마지막 인터뷰에 앞서 고레에다에게 자신이 중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한다.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더 이상 고레에다와 만나지 않을 거라고 선언한다. 키키는 “이제 할머니는 잊고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젊은 사람을 위해 써”라며 단호하고 냉정하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그 후 둘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키키가 세상을 떠난 9월 15일은 고레에다 어머니의 기일이기도 하다. 고레에다는 연애편지의 마지막을 작별인사로 마무리한다.

“어머니를 잃고 당신과 만났다는 억지는 옳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잃은 것을 어떻게든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제 작품에서 어머니 역할을 맡은) 키린 씨를 만날 수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저를 만나줘서 고맙습니다. 안녕.”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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