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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문재인은 상왕이 되고 싶은가, 잊혀지고 싶은 건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하 문재인)이 지난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짱깨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솔직히 이젠 그가 어떤 책을 추천하든 별 관심 없다.

2017년 대선 직전 동아일보가 ‘지금 이 땅의 국민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질문했을 때 자신이 대학시절 읽었던 ‘전환시대의 논리’를 추천했던 문재인이었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미화했던 197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의 필독서 말이다.

그럼에도 ‘짱깨주의…’ 책를 정독한 이유는 문재인이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고 한 데 그치지 않고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라고 강조를 했기 때문이다. 왜 문재인은 굳이 언론을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문재인은 9일 오전 페이스북 등 SNS에 “오랜만에 책을 추천한다”며 ‘짱깨주의의 탄생’을 소개했다. 문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 언론과 딴판으로 중국에 산타가 왔다

이 책은 저자인 김희교 광운대 교수가 2018년 12월 23일 부리나케 베이징행 비행기를 타는 걸로 시작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심해지던 무렵 중앙·한국·조선일보가 ‘크리스마스 캐럴 부르면 징역 5년형 받는 나라’ ‘중국엔 산타 못 간다’ 등등 보도를 하는데 진짜 그런지 눈으로 봐야겠다는 거다.

베이징 공항에 내려 시내 호텔에 체크인하고 백화점까지 가봤더니 천만의 말씀이었다. 종업원들 모두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꽝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 주기’ 이벤트까지 하고 있었다. 여기서 문재인이 쓴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대목이 나온 것 같다.

책에서도 지적됐지만 산타클로스 기사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인용 보도한 거였다. 기자를 능가하는 김 교수의 현장주의에 경의를 표한다. SCMP를 번역해 기사 쓴 기자가 왜 베이징 특파원에게 전화 한통해서 현장을 확인해보지 않았는지 나도 궁금하다. 아마 “백화점 매장에 산타 있던데” 대답했다면 기사가 안 되니까 아예 안 물어봤을 공산이 크다.

김희교 광운대 교수의 ‘짱깨주의의 탄생’ 책 표지

● ‘문 정권 적폐’ 보도가 두려운가

문재인으로선 그거 봐라, 싶었을 거다. 그러니 언론을 믿을 수 있겠느냐,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오죽하면 “세상사를 언론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겠나 싶긴 하다.

그렇다고 문재인이 자신 있게 할 말은 아니다. 당장 지난주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산업부가 탈원전을 하면 전기요금을 2030년까지 40%는 올려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묵살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13년간 누적 140조 원의 전기료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와 윗선에 보고했더니 “탈원전에 반대하는 거냐”고 윽박질러 인상 얘기를 못 했다는 거다.

2017년 6월 19일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때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면서 문재인이 뭐라고 했던가.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16년 3월 현재 총 1368명이 사망했다”고 발언했다.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대통령이 국민을 기만해도 되나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원전 사고가 직간접적인 원인이 돼 숨진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일본원자력안전·보안원 집계). 도쿄신문에 따르면 피난 생활을 하다가 숨진 ‘원전 사고 관련 사망자’가 총 1368명이었을 뿐이다.

대통령 자리에서 터무니없는 소리로 국민을 속여 원전을 폐기했고, 국가와 국민에 손실을 입혔다. 문 정부가 건설을 멈춰 세운 신규 원전 6기가 1차 운영 허가 기간 60년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전력은 500조 원 규모다. 기존 원전 24기에 20년 계속 운전을 금지하면 400조 원 손실이 생길 수 있다.

문재인은 이런 기사도 월성 1호기의 경제성 조작처럼 거짓이니 믿지 말라고 국민 앞에 외치고 싶을지 모른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문 정권의 적폐 기사가 계속 쏟아질 것이다. 수사 못하게 닫아두고 가려둔 일들이 터져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언론 믿지 말라고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라면, 유치하다.

지난달 10일 임기를 마친 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 업무에 도착해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 잊혀지고 싶다던 말은 거짓이었나

2020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대통령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권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문재인이었다. “대통령 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끝나면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이 마치 ‘관종’처럼 잊혀질까 두려운 듯 SNS를 자주 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구두 쇼핑을 하자 문재인도 지난달 26일 구두협동조합 ‘아지오’ 직원들이 문재인과 부인에게 보낸 합창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는가 하면, 윤 대통령이 9일 나토 참가 계획을 시사하자 문재인도 30분 뒤 ‘짱깨주의…’ 책 소개를 SNS에 올렸다.

문 전 대통령 페이스북에 지난달 26일 올라온 구두협동조합 관련 영상. 윤 대통령이 백화점에서 구두 쇼핑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12일 뒤 올라왔다. 문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달 12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내분에 휩싸여서 매일 싸우고 있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금 같은 콩가루민주당 상황에선 이런 전언(傳言)정치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금방이다. 결국 문재인이 원하는 건 현직 대통령 머리 위에 올라앉은 상왕(上王)이란 말인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