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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해체주의를 해체시킨 거장 프랭크 게리

[효효 아키텍트-13]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프랭크 게리 (Frank O. Gehry, 1929년~)의 작품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이 서울 청담동에 개관했다. 게리 건축의 특징인 굵직한 선과 비정형 디자인이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도 표현됐다. 곡선형 유리로 만든 패널을 격자 형태 철 구조에 부착했고, 입구부터 테라스까지의 외관을 유리 패널로 마감해 가볍고 우아한 느낌을 살렸다. 그의 나이 만 90세, 한국에서의 첫 작품이다. 30여 년 전 작품을 선보일 뻔했다. 서울 이태원에 리움미술관을 갖고 있는 삼성가가 1990년대 초 당초 미술관 터로 지목했던 곳은 북촌 운니동 옛 동양방송 스튜디오 일대였다. 게리의 설계 시안을 받았지만 터 매입과 접근성 문제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진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출생한 게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남캘리포니아대에서 건축을,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도시 계획을 전공했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빅터 그루엔 사무소(Victor Gruen Associates), 페레이라 루크만 같은 미국 내 여러 건축 사무소를 경험했고 1962년부터 자신만의 건축 사무소를 열었다.

프랭크 게리는 여전히 해체주의 건축의 대표적 건축가로 불린다. 2004년 준공한 서울 삼성동, 건물 정면(파사드)이 특이한 현대산업개발 사옥이 들어섰을 때 해체주의 건축양식이라고 했으나 이미 해체주의는 한물갔다는 평가가 있었다. 사옥의 파사드는 직선과 사선, 원, 사각형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추상그림을 표현하는 거대한 캔버스 역할을 했다. 설계를 맡은 이는 대니얼 리버스킨드(Daniel Libeskind, 1946~)다. 1980년대 초부터 실용적 기능성에 충실한 모던 건축의 틀을 뒤엎는 해체주의를 주창하며 피터 아이젠먼, 자하 하디드, 렘 쿨하스 등이 해체주의 건축의 주류를 형성했다.

지난 1월 방문했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게리의 노이어 촐호프(Neue Zollhof)를 만났다. 외관이 휘어지며 올라간 세쌍둥이 건물이다. 뒤셀도르프는 독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는 약 60만명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NRW)의 주도로 경제·산업의 중심 도시이고, 뮌헨, 함부르크 등과 함께 독일 지본주의 상징으로 불리는 부자 도시이기도 하다.

노이어 촐호프가 있는 지역은 메디언하펜(MedienHafen: Media Harbour)이라고 불린다. 노이어 촐호프는 항구에 자리 잡고 있던 세관 건물 터에 세워졌으며, 게리가 1996~1998년 설계했다. 건물 세 채 모두 자연 환기가 가능하도록 열고 닫을 수 있는 창문이 있으며, 창문의 배치나 창문과 외피의 관계가 모두 유사하다. 가장 높은 건물은 50m에 달하며, 비대칭적인 요소가 특징적이다.

뒤셀도르프는 알트비어(Altbier)의 본고장이다. 올드비어라는 뜻을 가진 이 맥주는 상면 발효 방식으로 만든, 라거 이전의 맥주다. 구시가지에 있는 양조장 한편 홀에서 받아든 어두운 구리색을 띤 알트비어는 술이 약한 나도 자꾸 들이키게 한다. 신선한 맥주의 정수를 맛본 듯하다.

1996년 체코 프라하의 댄싱하우스(Dancing House)에 이어 1997년 개관한 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은 게리의 명성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미술관은 화려한 곡선으로 외관이 이뤄져 있다. 강변이라는 대지의 특성을 이용해 한 척의 배 같기도 하며, 물고기 여러 마리가 뒤엉켜 헤엄치는 모습이기도 하다. 외관의 재료는 티타늄판, 유리, 석회암으로 이뤄졌다. 0.3㎜ 두께의 티타늄판은 바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광원이 반사되는 각도에 따라 매순간 미술관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내부는 천장 높이가 55m인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3개 층으로 나누어진 갤러리들이 포진한다.

그는 곡면 건축의 어려움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해결한다. 그는 미라지 전투기용으로 개발된 카티아(CATIA) 프로그램을 개량한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빌딩 각 부분을 소수점 이하 일곱 자리까지 표시한다. 이를 통해 건축면적, 체적, 기계 및 전기 시스템 등 원가 계산의 기본 요소도 분석한다. 또 건물 모양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솟아오르게 하고, 잡아당기고, 비틀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것을 2차원이 아닌 3차원 영상으로 세밀하게 보여줘 시공팀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2003년 완공한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Walt Disney Concert Hall)은 설계 후 16년이나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게리가 지역 주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위적이고 선구적인 아방가르드(Avant-garde) 부류는 중심 주류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있는 지역 정서 때문이기도 했다. 콘서트홀은 내외부 건축적 요소보다는 실내 음향적 변수가 필수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다. 음향학자인 야스히사 도요타(Yasuhisa Toyota)와의 협업이기도 하다.

게리는 1986년 완공한 일본 고베의 피시 댄스 레스토랑을 설계했다. 건축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바라보고 어린 시절 물고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설계한 건축물로 레스토랑 앞에 연결 사슬 철망을 엮어 약 20m 높이의 물고기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1981년부터 꾸준히 물고기를 등장시키고자 한 프랭크 게리의 제안은 번번이 거절당했는데, 그에게 물고기는 일종의 성취 대상이었다.

1989년 완공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VDM, vitra design museum)은 스위스 바젤에서 북서쪽으로 약 5㎞ 떨어져 독일 영토 안에 있는 조그만 도시 바일암라인의 가구공장 단지내에 있다. 단지 내 북쪽 코너에 지은 2층짜리 210평 정도 되는 의자 뮤지엄이다. VDM은 게리의 첫 번째 유럽 작품이다. 그의 인지도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일본 나라시의 불교 사찰 도자이지(Todai-ji, 東大寺)에서 거행된 행사에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다.

2005년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 1934~2008)이 제작한 프랭크 게리의 다큐멘터리에서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70대 노인 프랭크 게리의 손에는 가위와 두꺼운 종이가 들려 있다. 그의 앞에는 종이를 접거나 구겨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만든 모형이 있다. 프랭크 게리는 모든 작업을 도면이 아닌 모형에서 시작한다.

먼저 "정상적인" 카테시안(Cartesian) 형태를 구성한 이후, 다음 단계로 "덕지덕지 붙이고 빼고 기울이고 커브로 휘고" 하는 식으로 형태를 구성한다. 이때 느낌(feeling)이 전부다. 소위 게리 스타일의 해체주의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그는 직접성, 우연성, 즉흥성 등 자유로운 혼합을 통해 자연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려는 시도를 하며, 자유로운 형태와 우연적 형태를 추구한다.

※참고자료 : 건축사 손정민 블로그, 박영우 건축가 블로그, 그리심디자인그룹 건축사사무소 블로그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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