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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의 티 테이블] 기다림의 용기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는 인간의 실존을 ‘기다림’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시편은 ‘갈망하는 기다림’으로, 사도의 서신은 ‘참을성 있는 기다림’으로 그렸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 130:6)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기다림이란 가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다리는 것을 아직 가지지 못했어도 기다림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보지 못하는 것을 이미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림을 선택한다면, 기다리는 것의 능력이 우리 안에 실현될 것이다. 언제나 주님은 지체됨에도 불구하고,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

2000여년 전, 로마 제국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억압에서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렸다. 바리새인들은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렸고, 사두개인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유익을 좇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소수의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렸다. 누가복음 2장에는 오랫동안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기도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안나 선지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오랜 시간 메시아를 기다리며 기도하던 안나 선지자는 정결 예식을 위해 성전에 들어온 요셉·마리아 부부와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아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그 아기가 누구인지 선포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때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6~38)

기다림은 무력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선택이다. 안나 선지자가 오랜 기다림 끝에 메시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림의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소망을 굳게 붙잡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지시를 따르며, 당당히 서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 그토록 원했던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 실패하지 않으시며,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때 우린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5~26)

기다림은 고요하지만, 현재의 삶에 전념하게 한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로 불안 속에 연말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일상의 회복을 기다린다. 예배의 감격이 회복되길 기다린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이고 순전한 일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가 돼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가 돼 주고, 우리가 가진 그리스도의 치유와 소망의 최대치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절대 전해지지 않을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용기이다.

한국교회는 2021년 대림절(11월 28일~12월 24일) 첫 주를 보내고 있다. 대림절은 단순히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에서 더 나아가 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다. 성탄절 4주 전부터 시작되는 대림절은 주후 4세기경 초대교회에서 지키기 시작했으며, 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마라나타(Maranatha)”란 인사를 나누었다. 이는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2)라는 신앙고백으로 “인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주님께서 임하신다”라는 소망적 의미가 있다. 성탄절을 앞둔 온 세상에 마라나타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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