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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숙소에서 오전 6시 반... 이거 왜 몰라요?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최근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았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는 사람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연신 깔깔 웃는 연인들, 재잘대는 아이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게 꼭 좋은 건 아니었다는 걸 금세 깨닫는다.

사진을 찍을 때도 사람들을 피해 찍어야 하고, 좋은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는 오래 머물 수 없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부대끼는 사람들까지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평화롭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한산한 아침을 상상한다.

여행 갈 때 세심하게 챙기는 것 중 하나가 숙소의 위치다. 숙소 근처에 뛸 만한 곳이 있는지가 나에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딸은 저녁형 인간이다. 그들이 자는 아침에 나 혼자 조용히 밖에 나와 뛰며 그날 하루 지낼 힘을 충전한다. 아침 러닝, 아니 산책이어도 상관없다.

유명 관광지를 독차지 하는 법


 
섭지코지 아침 러닝 때 찍은 사진
 섭지코지 아침 러닝 때 찍은 사진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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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에서 아침 산책을 하면, 유명한 곳을 나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 항상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곳에 나 혼자 있는 그 느낌을 아는지. 갑자기 얼마나 부자가 된 것 같은지, 얼마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지. 난 섭지코지에 있는 많은 관광객을 보며 생각했다.

'내일 아침 이곳에 뛰러 와야지.'

아침 러닝(산책)의 묘미를 알게 된 건 5년 전, 독일 드레스덴에 갔을 때다. 드레스덴 구시가지에 숙소를 얻었다. 평소같이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혼자 이곳저곳을 뛰다 우연히 츠빙거 궁전에 들어갔다(티켓을 끊지 않고 그냥 들어갈 수 있다).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던 곳에 아무도 없었다. 

난 정원을 돌며 '안녕!' 하고 인사했다. 예전에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대단하신 분들이 살던 곳일텐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와 있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언젠간 없어지겠지. 대단한 사람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공평하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잘 살고 싶어진다.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 뒤로는 거의 항상 여행을 오면 아침에 러닝을 한다.

제주여행 이튿날, 아침 6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숙소가 섭지코지 근처라 조금 뛰다 보니 금세 올라가는 언덕길이 나왔다. 주변엔 풀을 뜯고 있는 말들뿐이다. 말 옆에 다가가 이야기를 걸기도 하고 풍경 좋은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푸른 바다와 초록 언덕이 다 내 것 같아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내 온몸이 멋진 풍경으로 꽉 채워져 충만해졌다. 갑자기 얼마 전 드라마에서 나왔던 '추앙'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 순간 자연이 날 추앙해주는 것 같다. 바다에 비친 반짝이는 햇빛이, 산들바람에 날리는 초록 나뭇잎들이, 드넓은 언덕에 핀 알록달록 꽃들이 날 향해 충만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기쁠 때 자연을 보면 자연이 함께 기뻐해 주는 것 같다. 새 소리도 노랫소리로 들리고 나뭇잎도 춤을 춘다. 힘들거나 슬플 때는 자연이 함께 슬퍼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새 소리도 나 대신 울어주는 울음소리 같고 나뭇잎과 꽃잎이 바람에 거세게 움직이며 나와 함께 화를 낸다.


 
"자연은(해와 바람과 비 그리고 여름과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워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 준다.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슬퍼한다면 온 자연이 함께 슬퍼해 줄 것이다. 태양은 그 밝음을 감출 것이며 바람은 인간처럼 탄식할 것이며 구름은 눈물의 비를 흘릴 것이며 숲은 한여름에도 잎을 떨어트리고 상복을 입을 것이다." - <월든> 5. 고독 中
 
난 나를 응원해 주는 바다와 풀밭에 크게 손을 흔들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가득 충전된 상태로. 아침 식사를 하며 남편과 아이에게 이 경험을 나누었다. 남편은 솔깃해하고 아이는 별 관심이 없다. 그다음 날엔 남편도 함께 아침 러닝을 했다. 관광지 아침 러닝의 좋은 점 또 하나는 바로 포토 스팟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거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열 장도 스무 장도 맘대로 찍는다.
   
남는 건 웃음소리뿐 "아하하하"
   
이번 여행에서 아침 러닝이 가장 빛을 발했던 장소는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만 머물다 가는 우도였다. 오후 2, 3시에도 식당에 웨이팅을 해야 하고 도로엔 전기차와 전기 자전거가 많아 운전하는 것도 아슬아슬 조심스럽다.

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또 아침을 상상한다. 오후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나니 사람들의 왁자지껄함은 어디로 가고 자연의 소리가 우도를 채운다. 삐리리 삐리리, 쏴아 쏴아, 컹컹 컹컹. 찌르르 찌르르.

다음 날 아침엔 우도를 한 바퀴 돌기 위해 전기 자전거를 탔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검멀레 해변 앞에 아무도 없다. 또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전거를 타다 기분이 좋아 소리를 지르다 "아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새소리와 바닷소리와 '아하하하' 웃음소리가 세상을 꽉 채웠다.

여행을 가서 자연이 주는 충만한 지지를 받고 싶다면, 아침 러닝(산책)을 해 보는 걸 추천한다. 팍팍한 삶에서 잠시 떠나 자연을 주는 지지를 누리고 가득 채워지는 경험을 해 보시기를.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