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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제주도 도박 DNA


함께 라운딩을 하던 친구가 어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단다. 뭐 하다 잠을 못 잤냐고 물었다. 스마트폰 하다, TV 축구 보다, 이것저것 하며 잠을 못 잤단다. 내가 “그 버릇이 어디 가겠냐”고 짚었다. 함께 있던 일행이 모두 웃었다. 본인도 말없이 인정했다. 그 버릇이란 스포츠 경기를 보며 여러 가지 상황에 돈을 거는 도박하던 습관을 이른다. 그가 처음부터 축구나 야구를 그렇게 잠을 자지 않고 볼 정도로 좋아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데 그는 도박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날 축구를 보며 잠을 못 잤단다.

전국의 사설 스포츠 게임은 ‘스포츠 토토’가 모델이다. 기본적으로 경기 승패에 베팅을 하고 야구의 경우 초구가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첫 포볼은 언제 나오냐, 첫 사사구는 누구냐 등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돈을 걸게 한다. 축구는 첫 골은 누구냐, 첫 옐로카드는 누구냐, 레드카드는 누구냐 등의 변수가 베팅 대상이 된다. 공식 스포츠 토토는 베팅 상한선이 있지만 사설 게임은 상한선이 없다. 불법 도박 게임으로 몰리는 이유다. 이러다 보니 사설 게임 운영자들이 결과를 설계하고 그 돈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한 선수들이 스캔들에 빠져 선수 인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6년 전 제주도에 온 첫해 동네 경로잔치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차려 먹고 마당에서 돼지고기를 굽는다. 한쪽에는 차일을 치고 멍석에서 윷놀이를 하는데 주변에 동네 남자 20여명이 둘러앉았다. 두 사람이 윷을 놀고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돈을 건다. 5만원, 10만원씩 걸었다. 한 사람이 돈을 받아 갖고 있다 결과가 나오면 이긴 쪽에 건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나는 도대체 모르겠는데 그는 한 치 오차도 없이 이긴 쪽에 건 사람을 찾아 잘도 나눠준다. 익숙한 거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여기 노름은 아주 커요.” 오늘은 낮이라 심심풀이란다.

몇 년 전 세화리에 초상이 났다. 밤새 윷판이 벌어졌다. 한 사람이 후배에게 돈 찾아오라고 카드를 줬다. 한참이 됐는데 오지 않았다. 동네 현금인출기마다 오만원권이 모두 떨어져 만원권 찾아 세느라 오래 걸렸단다. 그 집 문상객들이 이미 다 찾아간 것이다. 아버지가 밤새고 들어왔는데 아침에 누군가 집의 소를 끌어간다. 지금 50대 이상 시골 사람들은 어릴 때 자기 집 말고 이웃에서라도 한두 번쯤 본 장면이다. ‘바다이야기’가 한창일 때 세화리 게임장에 친구 마누라가 매일 출근하더란다. 남녀가 따로 없다.

가깝게 지내는 동생에게 제주도 사람들의 도박 근성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고 물었다. ‘뒷배’가 있어서 가능했단다. 그런데 뜻밖에도 뒷배는 어머니였다. 어릴 때 아들이 밖에서 맞고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다 다 커서도 노름에 지고 들어오는 것을 참지 못하는 제주도 어머니가 그 배경이었다. 아들이 돈을 잃고 오면 그 어머니는 아들 기를 살리기 위해 장롱 속 돈을 꺼내서라도 다시 보낸다. 허물없이 지내는 그의 마누라가 옆에서 거들었다. “신랑이 누구한테 지고 오는 꼴은 못 보지. 나중에 내 손으로 죽이더라도 당장은 돈을 빌려서라도 다시 보내지요.”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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