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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근대건축가는 박길룡 아닌 이훈우”

일제강점기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과 그 앞에 있던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사진 왼쪽)의 모습. 1925년 1월 개관한 이 기념관은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적 작가로 최근 재조명된 이훈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시국 행사는 물론 다양한 문화,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서 교당과 더불어 북촌의 천도교 타운을 형성했으나, 60년대 말 건물 앞 3·1대로가 확장되면서 철거됐다.

일제강점기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과 그 앞에 있던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사진 왼쪽)의 모습. 1925년 1월 개관한 이 기념관은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적 작가로 최근 재조명된 이훈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시국 행사는 물론 다양한 문화,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서 교당과 더불어 북촌의 천도교 타운을 형성했으나, 60년대 말 건물 앞 3·1대로가 확장되면서 철거됐다.

“이 평범한 주차장에 있던 건물이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종합문화스포츠센터 구실을 했죠. 당시 조선에서 공공집회 시설로는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였을 겁니다.” 지난 2일 낮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 주차장에서 황두진(57) 건축가가 답사를 시작하면서 말했다. 그는 주차장 공터에 1925년부터 70년대 초 도심개발로 철거될 때까지 ‘천도교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이란 교단 건물이 있었고, 일본에서 건축을 배운 유학생 출신으로 1920년 조선인 최초로 건축사무소를 차린 이훈우가 건물을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대신사’는 교단 창시자 최제우(1824~1864)를 일컫고 ‘출세’는 탄생을 뜻하기 때문에, 기념관은 건축가 이훈우가 1925년 최제우 탄생 100돌을 기려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숱한 시국·문화 행사와 경기·강의 등이 열렸고, 한양대와 성신여대가 이곳에서 개교하는 등 한국 근대 문화사와 교육사의 또 다른 무대가 바로 이곳이었다.
<동아일보> 1921년 3월18일치 지면에 실린 이훈우건축공무소의 광고. 조선 최초의 근대건축가로 널리 인식되어온 박길룡이 1932년 건축사무소를 차린 것보다 11년 앞선 시기에 이훈우가 독립적인 건축사무소를 차렸음을 보여준다. 일본에 유학해 관립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뒤 총독부에서 근무하다 퇴사하고 공무소를 차렸으며, 최신 서양식 건축 설계와 제도, 공사 감독, 준공검사, 토목공사 등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아일보> 1921년 3월18일치 지면에 실린 이훈우건축공무소의 광고. 조선 최초의 근대건축가로 널리 인식되어온 박길룡이 1932년 건축사무소를 차린 것보다 11년 앞선 시기에 이훈우가 독립적인 건축사무소를 차렸음을 보여준다. 일본에 유학해 관립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뒤 총독부에서 근무하다 퇴사하고 공무소를 차렸으며, 최신 서양식 건축 설계와 제도, 공사 감독, 준공검사, 토목공사 등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잊힌 건축가를 추적하다  황 건축가는 지난달 이훈우가 근대건축사에서 활동 시기가 가장 앞선 선구자임을 밝힌 논문 <건축가 이훈우에 대한 연구>를 다른 두 연구자와 함께 한국 건축역사학회 학술지에 발표했다. 학계에서는 조선 최초의 근대건축가를 말할 때 박길룡(1898~1943)을 거론해왔다. 박길룡은 1919년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1932년 건축사무소를 개설하고 간송미술관 등을 설계했다. 그런데 이번 논문은 그간의 통설을 뒤흔들었다. 박길룡보다 10여년 앞선 1910~20년대에 일본 유학을 마친 이훈우가 설계 활동을 벌였고, 실제 건물도 여럿 남긴 사실을 밝힌 것이다.
서울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 동쪽에 이훈우 건축가의 설계로 1924년 건립됐다가 60년대 말 철거된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의 터 일부엔 ‘세계 어린이운동 발상지’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천도교 지도자 의암 손병희의 사위였던 방정환이 이곳 교당과 총부를 근거지로 1920년대 어린이운동을 벌인 것을 기려 2000년 한국 방정환재단에서 설치했다.

서울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 동쪽에 이훈우 건축가의 설계로 1924년 건립됐다가 60년대 말 철거된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의 터 일부엔 ‘세계 어린이운동 발상지’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천도교 지도자 의암 손병희의 사위였던 방정환이 이곳 교당과 총부를 근거지로 1920년대 어린이운동을 벌인 것을 기려 2000년 한국 방정환재단에서 설치했다.

황씨와 손잡은 연구자는 미국 뉴욕 블룸버그사 에디터인 재미동포 유대혁(53)씨와 일본 교토대에서 일본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현경(36)씨다. 세 나라에 흩어진 세 사람이 2년간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면서 연구 성과를 공유·토론하는 ‘비대면 공동연구’로 결실을 이뤘다. 하는 일도 다르고 얼굴도 서로 몰랐던 이들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만나 온라인 아카이브 등을 통해 이훈우의 행적과 관련된 사료를 뒤졌다. 코로나19 사태 탓에 서로 만날 통로는 막혔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으로 날마다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협업한 끝에 근대건축 선구자의 유학 경로, 가계, 설계 활동 등을 논문으로 공개하게 됐다.
1969년 철거 중인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의 정면 부분. 철거 직전까지 쓰였던 영화관의 상호 ‘아폴론’이 눈에 띈다.

1969년 철거 중인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의 정면 부분. 철거 직전까지 쓰였던 영화관의 상호 ‘아폴론’이 눈에 띈다.

■ 네이버와 조선일보 사이트에서 흔적을 찾다  시작은 2017년 12월 황두진 건축가가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에서 꾸린 공연 무대였다. 1920년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유서 깊은 근대건축물에서 열린 ‘음악과 건축의 동행’ 클래식 음악회 연출을 맡은 그는 교단이 전해준 천도교 건물 자료를 읽다가 ‘이훈우’를 발견했다. 대교당 옆 대신사기념관을 1925년 완공했는데, 이훈우가 설계했다는 구절이 보였다. 20년대 초 설계작을 내놓았다면 최초의 근대건축가로 알려진 박길룡보다 시기가 훨씬 앞서는 게 아닌가. 호기심이 일었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은 건축가인지, 활동 내력은 무엇인지 등을 밝힐 단서가 막연했다. 공식 사료는 전무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 일대를 &lt;한겨레&gt; 취재진과 답사한 황두진 건축가가 첨탑이 솟은 교당 옆에 빈자리로 남은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 터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1925년 1월 개관한 기념관은 조선 근대건축의 선구적 작가로 최근 확인된 이훈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당시 조선의 종합문화스포츠센터 구실을 했던 역사적 시설이었으나, 1960년대 말 철거되는 비운을 맞았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 일대를 <한겨레> 취재진과 답사한 황두진 건축가가 첨탑이 솟은 교당 옆에 빈자리로 남은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 터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1925년 1월 개관한 기념관은 조선 근대건축의 선구적 작가로 최근 확인된 이훈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당시 조선의 종합문화스포츠센터 구실을 했던 역사적 시설이었으나, 1960년대 말 철거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훈우의 정체에 관한 고민을 2018년 초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미국에서 구한말 사료 수집을 하던 유대혁씨가 연락해왔다. 유씨는 ‘아단문고’에서 천도교 종합잡지 <개벽>을 검색해 1921년 10월호에 이훈우가 낸 건축공무소 광고를 찾아냈다. 조선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사무소를 개업했음을 확인했다. 그래도 근본적인 의문은 남았다. 제대로 된 건축 교육을 받았는지, 기념관 외에 또 다른 작품이 있는지 등은 안갯속이었다.
1960년대 영화관으로 쓰였던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 건물 뒤로 천도교 대교당이 보인다. 건물 앞 3·1대로가 60년대 말 크게 확장되면서 건물이 통째로 헐리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1960년대 영화관으로 쓰였던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 건물 뒤로 천도교 대교당이 보인다. 건물 앞 3·1대로가 60년대 말 크게 확장되면서 건물이 통째로 헐리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지난해 페이스북을 보고 연구에 합류한 일본사 연구자 김현경씨가 실마리를 찾아냈다. 검색엔진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동아일보> 1921년 3월18일치에 실린 이훈우 건축공무소 광고 문구를 확인한 것이다. ‘일본에서 유학해 관립고등공업학교(고공) 건축학과를 졸업’했으며 ‘최신 서양식 건축 설계와 제도, 공사 감독, 예산 감정, 토목공사 등도 취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목에 착안해 당시 건축과가 설치된 일본 관립고등공업학교는 도쿄와 나고야에만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1910년대에 나온 일본 관보 일람을 뒤져 그가 나고야 고등공업학교에 1908년 입학해 1911년 졸업했음을 밝혀냈다. 건축사무소가 있던 곳은 종로 단성사 인근 오쿠다사진관 3층. <사의 찬미>로 유명한 가수 윤심덕의 거처와 같은 건물을 썼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 한 가지 도움이 된 건 지난 3월5일 서비스를 시작한 <조선일보>의 100년 뉴스 검색 사이트다. 1920년 12월 사무소 개업 기사와 1929년 설계한 조선일보 평양지국 건물 등을 확인해 논문에 실을 수 있었다.
이훈우 건축가의 1929년 작품인 조선일보사 평양사옥. 그해 9월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후 그의 행적은 밝혀진 것이 없다.

이훈우 건축가의 1929년 작품인 조선일보사 평양사옥. 그해 9월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후 그의 행적은 밝혀진 것이 없다.

■ 1929년 이후 행적 등 풀어야 할 숙제들 지난 31일 황 건축가의 사무실에서 화상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세 연구자가 모처럼 모였다. 이들은 “광범위한 온라인 아카이브를 뒤지는 것이 피곤했지만, 오직 검색으로 초창기 근대건축가의 생애를 상당 부분 복원해 한국 근대건축사의 서사를 넓힌 것은 진기한 성과”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를 모르고 작품론을 쓸 만큼 그의 설계작이 충실히 파악되지 않았으며, 1929년 이후 행적을 찾을 수 없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황 건축가는 “올해는 이훈우가 건축사무소를 개설한 지 100주년인데, 이런 성과가 나와 다행”이라며 “앞으로 그의 행적을 둘러싼 추적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황두진 건축가 제공
김현경 도쿄국립박물관 협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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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혁 미국 블룸버그사 아시안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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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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