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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 당신의 드리블 잊지 못할 거예요

디에고 마라도나 26일 별세
20세기 가장 뛰어난 아르헨 축구 영웅
86년 월드컵 우승, 나폴리 소속 전성기
‘신의 손’ 논란, 약물 중독 등 오점
세계 축구계 스타 ‘디에고는 영원할 것’

디에고 마라도나 사망 당일인 11월25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텔모 인근에 그려진 그의 벽화 앞에 추모의 꽃들이 놓여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FP 연합뉴스

디에고 마라도나 사망 당일인 11월25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텔모 인근에 그려진 그의 벽화 앞에 추모의 꽃들이 놓여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FP 연합뉴스






1m65의 단신. 그러나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백만년을 해도 내가 근접할 수 없다”(리오넬 메시)는 찬탄을 들었고, “내가 공으로 하는 것을, 그는 오렌지로 한다”(미셸 플라트니)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기의 기술을 뽐냈다. 하지만 ‘작은 영웅’도 필멸의 인간이기에 60살을 일기로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은 두 명 중 하나인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별세했다. 마라도나의 대변인인 세바스티안 산치는 “2주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퇴원한 마라도나가 이날 오후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1960년 10월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빈민가에서 태어난 마라도나는 16살 때 1부리그 아르헨티노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1997년 보카 주니어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22년간 클럽팀(491경기 259골)과 국가대표팀(91경기 34골)에 영광을 안긴 최고의 ‘10번’ 플레이메이커였다. 일부에서는 천재는 게으르다고 하지만(실제 그는 나폴리 시절 훈련에 빠지기도 했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코치들은 “훈련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연습했다”라고 증언한다. 키가 작은 대신 중심이 낮아 균형 감각이 탁월하고, 탄탄한 근육의 다리로 공을 몸에 달고 다니면서도 상대의 육체적 압박을 헤쳐나가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시야와 드리블, 프리킥, 창조성까지 갖췄다.
‘신의 손’ 논란을 낳았던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전.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신의 손’ 논란을 낳았던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전.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와의 대결은 ‘악마와 천사’라는 양면적 성격을 보여주었다. 마라도나는 후반 6분 핸드볼 골로 ‘신의 손’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2005년에야 이를 시인했다. 하지만 당시 경기에서 후반 10분 중앙선 아래서부터 50m를 11번의 터치 만에 5명의 수비수를 따돌리며 올린 두 번째 골은 ‘20세기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1-2로 패배한 잉글랜드의 선수들도 신계에 도달한 듯한 마라도나의 돌파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보비 롭슨은 “첫 번째 골은 의심스럽지만, 두 번째 골은 잔혹한 기적”이라고 했다. 마라도나는 이후 우승까지 팀을 이끌었고,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까지 거머쥐었다.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잉글랜드전에서 승리하고, 월드컵 우승까지 안긴 마라도나에 대해 갖게 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은 그의 죽음에 3일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그의 대중성은 짧은 FC바르셀로나 생활(1982~84년)을 거쳐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1984~91)로 옮기면서 클럽 차원에서도 몰아쳤다. 당시 나폴리가 마라도나를 영입하면서 기록한 690만파운드(약 102억원)의 이적료는 역대 최고였다. 만년 중하위팀 나폴리는 마라도나의 활약으로 처음으로 정규리그(1987년, 1990년)와 1989년 유럽축구연맹(UEFA) 컵을 제패한다. 농업 중심의 이탈리아 남부와 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소득 격차 등으로 인한 갈등이 심하다. 이런 가운데 마라도나가 AC밀란, 유벤투스, 인테르 밀란 등 북부 부자 도시 연고 팀을 유린하는 모습에 나폴리 시민들은 열광했다.
1987년 한 시상식에 함께 선 마라도나(오른쪽)와 펠레. AP 연합뉴스

1987년 한 시상식에 함께 선 마라도나(오른쪽)와 펠레. AP 연합뉴스

그라운드 안에서는 영웅이었지만 그라운드 밖 생활은 모범적이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뛰던 1991년 약물 검사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을 보여 결국 팀을 떠나게 됐고, 네번째로 출전한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도핑에 적발돼 2경기 만에 퇴출당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은퇴 뒤 아르헨티나 대표팀(2008~10)을 이끌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8강에서 멈췄고, 최근까지 자국 프로축구 1부 힘나시아 라플라타를 지휘하는 등 여러 클럽을 이끌었지만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 못했다. 또 마약이나 알코올로 인해 여러 차례 건강 문제를 겪기도 했다. 마라도나의 사망에 메시와 크리스타아누 호날두(유벤투스) 등 축구계는 깊은 애도를 표했다. 메시는 “디에고는 영원하다. 그와 함께 살았던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고 그의 모든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보낸다”고 밝혔다. 영국의 <비비시>는 조사에서 “가장 재능있는 선수 가운데 하나로 현기증 나고, 악명 높고, 특별하고, 천재적이지만 흠결이 있는 축구 영웅으로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다”고 썼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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