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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전태일 정신’에서 숭고함 봤죠”

【짬】 전태일의 친구들 송필경 이사
송필경 이사가 치과 진료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송필경 이사 제공

송필경 이사가 치과 진료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송필경 이사 제공

“전태일 사상은 한 문장으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향한 연민’입니다. ‘어린’, ‘여성’, ‘노동자’란 세 단어의 조합은 우리 사회에서 힘없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모든 사회적 약자를 상징합니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전태일 정신은 노동자 투쟁의 차원을 넘어, 더 폭넓게 인류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숭고한 정신적 가치입니다.”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송필경 이사의 말이다. 그는 지난 12일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집에 최근 나온 자신의 책 <왜 전태일인가-사람 전태일>(살림터)을 가지고 갔다. 천 명 가까운 시민 후원금으로 열사의 생거지를 사서 ‘전태일 문패’를 다는 날이었다. 집은 리모델링을 거쳐 열사의 모친인 고 이소선 선생 10주기인 내년 9월에 전태일 기념관으로 정식 개관한다. 지난 25일 전화로 만난 송 이사는 “문패를 달던 날 기쁨의 통곡을 했다”고 전했다. “전태일 기념관 건립을 위해 대구 시민이 5억원을 모았어요. 기적에 가깝죠. 그날 제 맘속에서 기쁨의 눈물이 폭발하더군요.”
왜 전태일인가-사람 전태일 표지.

<왜 전태일인가-사람 전태일> 표지.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책을 쓰려고 자료를 모았다. “원본 수기 등 전태일 자료를 하나하나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꾹꾹 눌러두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폭발하는 눈물이었죠. 전태일은 비참하게 살면서도 조금이라도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길가다 점 보는 할아버지가 추위에 떨자 점퍼를 벗어줍니다. 가출해서 영등포역에서 우동을 먹을 때는 군인이 자신이 먹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자 우동을 사주기도 하죠. 수중에 돈이 달랑달랑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상황에서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전태일 생의 한 장면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전태일은 13살 때 서울 용두동 천막촌에서 살면서 길에 버려진 곰팡이 핀 무말랭이를 주워 반찬으로 끓여 먹었어요. 이런 비렁뱅이 생활을 했으면서도 훗날 평화시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게 한없는 연민을 베풀었죠.” 책은 동료 노동자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전태일 열사의 인간적 면모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이기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낼 수 없었던” 열사의 삶에서 “종교적 속성이라고 할 숭고한 가치”를 본다. 아들의 뜻을 이어 노동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고 이소선 선생과 수배 중 청계천을 누비며 열사의 행적을 추적해 인간 전태일의 삶을 복원한 조영래 변호사의 자취도 비중 있게 다뤘다. 치과의사인 저자는 80년대 후반 이후 대구 지역 시민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다. 지난해 창립 30년을 맞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창립 회원이며 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와 집행위원장도 지냈다. 건치 대구·경북지부는 2017년에 ‘건강사회를 위한 대구·경북 민주시민상’을 만들어 해마다 수상자에게 상금 1천만원을 주고 있다. 첫해는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가 받았다. 송 이사 등 지부 전체 회원 15명이 뜻을 모아 기금을 마련한단다. 대구 전태일 기념관 건립 이끌고
최근 열사의 인간적 면모 살핀 책도
80년대부터 대구 시민운동 한복판
대구·경북 민주시민상 제정도 주도
동료 치과의사들과 베트남 의료봉사
호찌민 다룬 저술은 최근 베트남판도
송 이사가 지난 12일 전태일 문패달기 행사에서 김상봉 전남대 교수와 사진을 찍고 있다. 송필경 이사 제공

송 이사가 지난 12일 전태일 문패달기 행사에서 김상봉 전남대 교수와 사진을 찍고 있다. 송필경 이사 제공

그는 2001년부터 동료 치과의사들과 함께 모두 10차례 베트남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2013년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국부로 떠받드는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인 호찌민의 삶을 다룬 <왜 호찌민인가>를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지난 10월 베트남국영출판사가 베트남어로 번역 출간했다. 건치가 2000년에 시작한 베트남 의료봉사 참가자들은 한국군이 베트남전 때 저지른 학살 지역을 찾아 사죄하고 의술을 펼쳐왔다. “우리 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을 다룬 <한겨레21> 보도가 계기였죠. 그 기사를 보고 사죄운동의 하나로 의료봉사에 나섰어요.” 베트남은 그를 ‘인간 전태일’로 안내하는 디딤돌이었다. “의료봉사까지 그동안 베트남을 28번이나 갔어요. 전국을 누비며 베트남 공부를 하면서 이 나라 사람들이 참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로 치면 목포에서 백두산까지 백두대간을 맨발로 걸어가 프랑스 침략자들과 싸워 물리쳤어요.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그 먼 거리를 걸어 갑니다. 그렇게 미국과도 싸워 물리쳤어요. 얼마나 숭고합니까. 그때 숭고의 개념을 알았죠. 제가 베트남에서 하는 사과도 ‘우리가 잘못해 미안하다’는 일반적인 사과가 아니라 ‘당신들의 숭고한 행위를 우리가 방해해 미안하다’는 사과입니다. 목숨 걸고 제국주의와 싸운 그들의 행위는 정당하고 정말 훌륭했죠. 진료를 매개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사랑의 화해’를 하는 거죠.” 그가 보기에 전태일은 베트남에서 찾은 숭고함이 그대로 적용되는 인물이다. “베트남 공부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10년 전에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았어요. 먼저 썩은 왕조 체제를 개혁하려고 한 수운 최제우와 녹두장군 전봉준의 만남이 떠올랐죠. 일제 시대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 역사의 자존심을 세웠어요. 그리고 자기 죽음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 전태일이죠. 그의 죽음은 누구보다 숭고했어요. 우리도 전태일 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 역사가 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가 이를 데 없이 장엄하다고 평한 전태일의 세 번째 유서(70년 8월 작성)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그는 내년에는 전태일과 이소선, 조영래 세 사람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써볼 생각이다. “전태일이 예수라면 이소선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조영래는 사도 바울이죠. 세 분의 정신적 가치는 우리가 모두 소중히 간직해야 할 민족적 자산입니다.” 쿠바 여행기 <왜 체 게바라인가> 출간도 앞둔 송 이사는 이런 말도 했다. “전태일이 60년대 말에 삼동회나 바보회를 만들어 활발히 활동할 때 ‘대구사람 전태일’이라며 고향 대구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냈어요. 대구에서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닐 때를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해서겠죠. 대구 사람들이 ‘대구는 전태일의 고향이다’라고 인식할 때 대구가 보수성에서 벗어나는 동력이 생길 겁니다. 그게 제 목표이기도 하죠.” 그는 이번 책의 인세 수입 모두 전태일 기념관 건립에 보탠다고도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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