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팬데믹 1년, 공론장 채웠던 ‘말’을 다시 보다

한겨레말글연구소, 한국·중국·일본·미국의 코로나19 공적담화 주제 세미나
일본 ‘언어 내셔널리즘’, 시진핑 ‘무오류’ 증명에 집중한 중국 등 특징 짚어

“코로나19는 어느 날,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검역으로 ‘미즈기와’(水際·상륙 전 섬멸을 뜻하는 군사용어) 대책 강화를 도모하겠다.”(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방역은 단순히 보건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전방위적인 문제이며, 총체적인 전쟁이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던 지난해 2∼3월 미국·일본·중국 지도자가 내놓은 발언들이다. 지도자의 말은 대체로 분명한 목적성을 띠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지도자가 팬데믹 상황을 얼마나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하려는지가 길지 않은 말 속에 응축돼 담긴다. 오는 11일 팬데믹 1년을 앞두고 한겨레말글연구소는 4일 ‘한국·중국·일본·미국의 코로나19 공적담화’를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 참여한 4명의 연구자(임경화 중앙대 접경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김예경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신진원 부산대 교양교육원 강사)는 공적 영역에 쏟아진 지도자, 정부, 언론의 말을 분석했다. 한국 발제를 맡은 신진원 강사는 코로나19 이후 중국에 대한 한국 언론의 평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폈다.
팬데믹 국면에서 각 나라의 지도자는 상황의 심각성을 규정하고, 국민으로부터 방역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말을 쏟아냈다. 왼쪽부터 코로나19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PA 연합뉴스, 신화 연합뉴스

팬데믹 국면에서 각 나라의 지도자는 상황의 심각성을 규정하고, 국민으로부터 방역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말을 쏟아냈다. 왼쪽부터 코로나19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PA 연합뉴스, 신화 연합뉴스

일본 발제를 맡은 임경화 연구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한층 더 노골화한 일본의 ‘언어 내셔널리즘’을 조명했다. 아베 전 총리는 한 기자회견에서 “‘3밀’(밀폐·밀집·밀접)은 ‘three Cs’(Closed spaces, Crowded places, Close-contact settings)로 세계에 인식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이 고안한 방역 캠페인 문구 ‘3밀’(三蜜)이 세계로 수출됐음을 강조한 것이다. 엉성한 방역대책으로 거센 비판을 받은 아베 전 총리가 여론을 다독이기 위해 그나마 잘한 일을 콕 집어 강조한 것인데, 그 기저에는 자국어에 대한 일본의 ‘위험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고 임 교수는 지적한다. “일본의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한국 이태원발 집단감염의 원인으로 비말이 많이 튀는 한국어와 ‘3밀’을 피하지 않는 한국인의 습관을 꼽은 사례에는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심각함이 내재되어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일본어 내셔널리즘의 모습이 일본어의 우수함에 더해 청결함이라는 가치를 띠도록 변이되었을 때, 이것은 방역이라는 구실로 일본 내 언어 다양성을 억누르고 타 언어를 차별하는 논리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아베 전 총리가 언급한 ‘미즈기와’ 대책도 주목한다. 미즈기와는 해상으로 공격해오는 적이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물가(미즈기와)에서 섬멸한다는 뜻의 군사용어로,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바이러스의 상륙을 막기 위해 항구·공항의 검역을 강화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이런 접근법은 “국경만 강화하면 국내는 안전하고 청결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자국 우선·우월의 시선”에서 탄생했으며, 결국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임 교수는 지적한다. 김예경 입법조사관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담화와 언론 보도를 들여다봤다. 김 조사관이 2020년부터 올해 2월14일까지 중국 관영 인터넷 매체 ‘중국뉴스망’과 각종 신문 기사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언론보도는 중국 공산당과 시 주석의 ‘무오류’를 증명하는 데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사스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정부와 공산당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비판이 어느 때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시 주석이 날짜별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지시를 했는지 일지 형식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시 주석이 적기에, 적절한 지시를 내려 코로나19 위기를 잘 통제하고 있음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으로 보인다. 김 조사관은 중국 공산당과 시 주석이 국제사회에서 쏟아지는 코로나19 책임론을 피하고, 중국 인민의 애국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언론을 ‘충실한 (메시지) 전파자’로 활용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이창봉 교수는 언어학자의 시선으로 미국의 방역 실패를 다시 읽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전시 사령관’이라 칭할 정도로 전쟁 은유를 자주 사용했는데, 동시에 “괜찮다(fine), 사라질 것이다(disappear, fade away)” 등 무책임한 표현을 남발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했다. ‘차이나 바이러스’(China Virus)라는 용어를 써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조장한 점, 사망자가 대거 발생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어요. 사실입니다. 당신도. 이게 현실이에요.(They are dying, that’s true. And you have ―it is what it is)”라고 말하며 죽음에 무감한 태도를 보인 점도 부적절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한국 발제를 맡은 신진원 강사는 코로나19 이후 중국을 보는 한국 언론의 관점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폈다. 2020년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사설 제목을 전수조사했는데, 코로나19 이후 보수신문은 중국에 대한 부정적 기조가 확고해진 반면, 진보신문은 긍정적 기조에서 부정적 기조로 태도 전환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했던 중국인에 대한 제노포비아는 한국 신문 사설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한국 내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현상은 미국 등에서 발생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제노포비아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일이 된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신 강사는 분석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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