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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은 패션이다] 오디션을 보면 사람이 보이고 삶이 보인다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3’의 우승자 한동근의 모습. 처음으로 제목에 ‘오디션’이라는 단어가 붙은 프로그램이다. 방송사 제공

PD 시절 ‘여의도 삼국지(KMS)’를 써보려 했던 나는 방송 입문 전 2년 반 동안 국어교사를 한 경력이 있다. 중학생 때부터 국어 선생님 되는 게 목표였다. 생활기록부엔 온순한 아이라 적혀 있었지만 단순한 아이는 아니었다. 주의가 산만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넌 왜 그렇게 갖다 붙이길 좋아하냐’며 야단맞은 기억도 난다. 바로 이 ‘갖다 붙이기’ 능력(?)이 오늘날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

어찌 보면 나는 방송사에 현장실습 다녀온 국어교사라 할 수 있다. 실습 기간이 좀 길었던 건 인정한다. 그러나 학교에서건 방송사에서건 언어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언어의 유희를 일삼았다. 일찍이 나는 모든 언어가 핏줄처럼 연결돼 있다고 간주한 적이 있다. 비슷하게 보이거나 들리는 말은 언어의 형제가 아닐까 의심했다. 헤어졌던 형제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면 몰라보게 달라진 서로에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어느 순간 DNA가 일치함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기(史記)는 누군가에게 사기(詐欺)가 될 수도 있다’ 예능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방송사에 갓 들어와서 부장님 훈시를 들었다. “프로그램은 중학교 2학년 수준에 맞춰라.” 교단에서 처음에 중2 국어와 중3 한문을 가르친 사람으로서 다소 충격적이었다. 시청자를 존중하라는 건가, 아니면 무시하라는 얘긴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시청자가 무시당했다고 느끼면 그건 제작자가 교만한 것이고 만약 감동을 느꼈다면 그건 제작자가 시청자를 배려한 것이다.

오늘의 핵심어는 오디션이다. 오디션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삶이 보인다. 근래 들어 오디션 프로가 지나치게 많다는 우려도 들린다. 그런데 걱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 오디션이 많은 건 지금 오디션이 필요해서다. 수요가 사라지면 공급도 사라진다.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애정이 살짝 부족해서다. 애정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다수에게서 애정이 사라지면 다수의 오디션도 사라질 것이다.

미스터트롯(TV조선). 방송사 제공

PD를 겨냥하는 조롱 중 하나가 ‘시청률의 노예’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와 시청자 지상주의는 한 끗 차이다. 오디션이 그 변화를 선도(善導 아니고 先導)한 측면이 있다. 이른바 오디션 민주주의다. 심사위원들은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된다. 오디션전문가란 신념이 아니라 신뢰를 갖춘 사람이다. 믿고 맡긴 그들이 1등으로 뽑으면 그가 최고일까. 사람들은 반전을 좋아한다. 역전에 열광한다. 최종에서 순위가 뒤집히면 제작진은 즐겁다. 당사자에겐 실망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희망이다. ‘미스터 트롯’에서 심사위원이 뽑은 1위는 진또배기 이찬원이었다. 그는 시청자점수에서 임영웅, 영탁에 밀려 3위를 했다. ‘싱어게인’에선 ‘선비메탈의 창시자’ 정홍일이 심사위원평가 1등이었지만 시청자평가에서 이승윤에게 밀려 2등을 했다. ‘트롯전국체전’에선 심사단평가에서 ‘트로트 야생마’ 신승태가 1등을 했지만 전화 점수합산에선 4위로 밀려났다. 화면에선 웃었지만 귀가하는 차 안에서 혹시 울지 않았을까.
싱어게인(JTBC). 방송사 제공

사람들은 장점뿐 아니라 단점을 인정하고 보완하려는 자 역시 좋아한다. 잘생긴 사람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미는 시각의 영역이 아니라 미각의 영역이다. 그래서 인간미(人間味)라고 쓰는 것이다. TV 오디션은 듣기평가가 아니다. 라디오 오디션이었다면 결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기본을 갖춘 실력자라야 뽑힌다. 실력이란 무엇인가. 오디션은 확실한 사람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 성실한 사람, 진실한 사람도 가려내기 힘들다. 자신감과 겸손함을 동시에 갖춘 매력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오디션이다. 나는 사력을 다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사력은 4력이다’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4력은 능력, 매력, 노력 그리고 협력이다. 가창력이 능력이라면 표정이나 스토리는 매력의 요소다. 장르를 바꾸고 채널을 이동하며 자신을 알리려는 적극성은 노력의 범주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게 협력자다. 그건 자신을 알아본 제작진일 수도 있고 전문가일 수도 있다. 미지의 팬들일 수도 있다. 더 큰 건 시대의 조력이다. 마침 그때 그런 무대가 생겼고 거기에 오를 수 있게 돕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 그건 어쩌면 운명이다.

출연자는 말한다. “전 그냥 노래하는 게 행복합니다.” 그게 진심이라면 혼자 노래 부르면 된다.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야간에 산중에서 노래한다고 누가 시비 걸 것인가. 문제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싶다는 욕구다. 무대를 보면 드러나는 사람과 드러내는 사람이 골고루 포진돼 있다. 누군가는 관종(관심종자)이라면서 얕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차피 세상은 관종과 관중의 집합체다. 관중과 포숙은 절친 사인데 관중과 관종은 어떤 관계일까. 관중은 얄궂다. 응원하지만 모두를 응원하는 게 아니다. 한 사람, 한 팀을 응원한다. 스타와 팬들은 친구를 넘어 가족이 된다. 배신자가 되기도 한다. 예능계에서 변절은 자유다. 영원할 거라고 믿지 마라. 끝까지 도시락을 준비하는 팬은 없다.

슈퍼스타K(엠넷). 방송사 제공

제작진도 인간인지라 자존감도 있고 자존심도 있다. 오디션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처음 붙은 건 MBC가 제작한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이다. 하지만 그건 당시 화제의 중심이던 ‘슈퍼스타K’를 의식한 기획이었다. 시청자는 창의적이라고 좋아하는 게 아니다. 유익해서 보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재밌으면 본다. 제작진의 입장에선 꿩 잡는 게 매다. 오디션은 재미의 요소를 두루 갖춘 포맷이다. 노래를 좋아해서 보는 사람이 일단 확보된다. 눈물겨운 사연도 마음을 끄는 요소다. 시련을 견뎌낸 사람들은 그 자체가 드라마다. 통계를 보면 시청자는 대화보다는 대결을 좋아한다. 공연보다 경연을 좋아하는 것도 연장선상이다.
프로듀스 시리즈(엠넷). 방송사 제공

오디션은 문을 통과하는 절차다. 관중과 관종 사이를 가로막는, 혹은 이어주는 문지기는 누구일까. 바로 제작진이다. 오디션 문지기에게도 필요한 건 전문성과 도덕성이다. 안목과 양식이 병존해야 한다. 페어플레이가 흔들리면 문은 무너진다. ‘프로듀스 101’사건으로 입은 오디션 종가의 치명상은 그래서 반면교사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다. 그 말도 맞는다. 한편으로 예능은 예능 그 이상이다. 예능은 시대의 욕망을 대변한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대에 서길 원하는가. 그들을 보면서 ‘저런 애가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쟤는 왜 나온 거야’ ‘쟤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모르나’ ‘쟤는 도대체 뭘 안다고 출연자를 함부로 평가하나’ 이러면서 세상을 즐기기도 하고 탓하기도 하는 것이다. TV는 심심풀이 땅콩일까. 그저 시간을 죽이거나(킬링타임) 때우는 수단일까. 그러나 보는 동안 적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면 그건 예능의 일정 부분 목표달성이다.

인생 자체가 사실은 오디션이다. 우리는 뽑고 뽑히며 산다. 좋은 걸 뽑는 게 오디션의 취지인데 안 좋은 게 뽑히기도 하는 게 인생사다. 면접관은 인재를 뽑는다. 농부는 잡초를 뽑는다. 저기서 떨어진 지원자가 여기선 수석일 수도 있다. 잡초가 논밭에 안 피었다면 야생화로 시인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미스터 트롯’에서 안 뽑혔으면 ‘싱어게인’에도 나갔을 거야’라고 한 임영웅의 말은 가진 자의 여유로도 들리지만 솔직한 고백으로 와 닿는다. 탈락자에게 계속 도전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예전엔 ‘불가능은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가 붙어있던 벽에 지금은 ‘안 되면 퇴근하라’가 붙어있다는 말도 들었다. ‘안 되면 퇴사하라’는 건 잔인한 요구지만 ‘안 되면 퇴장하라’ 정도는 삶의 지혜일 수 있다.

전국노래자랑(KBS). 방송사 제공

오디션에서 낯익은 지원자를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10년 전 ‘위대한 탄생’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이태권은 ‘싱어게인’ 41호 가수로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임영웅과 동갑내기(1991년생)다. 반짝하고 없어지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고 인터뷰를 했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를 위해서도 오디션은 계속되어야 한다. 인생 오디션에선 최고 최상 최대가 아니라 최후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최초, 최후의 오디션을 이끄는 ‘전국노래자랑’의 송해는 예능의 연구대상이다.
주철환 프로듀서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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