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This article was added by the user . TheWorld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the platform.

가사근로자법 시행되지만…플랫폼 중개업체 시장 잠식 우려

70년 가까이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우리 곁의 ‘그림자 노동’으로 존재해온 가사노동자들이 오는 16일 ‘가사근로자법’ 시행으로 노동자로 인정받게 된다. 지난 2월26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제이유(JU)에서 돌봄노동자와 서비스 이용자 모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의 정기총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 제공

70년 가까이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우리 곁의 ‘그림자 노동’으로 존재해온 가사노동자들이 오는 16일 ‘가사근로자법’ 시행으로 노동자로 인정받게 된다. 지난 2월26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제이유(JU)에서 돌봄노동자와 서비스 이용자 모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의 정기총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근로자법)이 오는 16일 시행됨에 따라 가사노동자도 일반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갖게 됐다. 가사근로자법의 법제화 시도는 2010년 18대 국회부터 지속해서 이루어졌지만 번번이 입법에 실패했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와이더블유시에이(YWCA)연합회,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 가사 3단체가 중심이 되어 가사노동자에게도 노동권을 보장해주는 법 제정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외쳤다. 그 노력이 열매를 맺어 이제 요건을 갖춘 기업은 ‘제공기관’으로 인증을 받고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됐고, 가사노동자는 최소 근로시간, 연차, 유급휴가 등 근로조건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사근로자법 시행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가사근로자법 시행을 위해 애써온 협동조합, 비영리법인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애초 가사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가사 서비스업을 체계화하기 위해 공익적 제공기관과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내용이 포함된 법안이 발의됐지만, 지난해 법 제정 과정에서는 이 부분이 논의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공익적 성격이 강한 사회적경제 조직이 철저하게 시장 논리에 영향을 받아 공익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가사노동자 직접고용에 따른 노동비용 상승으로 서비스요금이 올라가고 자본력이 풍부한 플랫폼 중개업체들이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조직 성격과 법·제도적 한계로 자본금 증자가 어려운 영세한 협동조합과 비영리법인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제도권의 높은 문턱에 따른 고민이 크다. 성남에서 10년간 사업을 운영해온 ‘성남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돌봄과살림협동조합’ 관계자는 “현재의 운영 구조로 추가되는 노무비를 부담하기 쉽지 않다. 노동자 조합원과 서비스 이용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익적 제공기관의 지원 방안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돌봄의 ‘수혜자’에서 돌봄 제공자로

가사 서비스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중개하는 곳들은 지역사회에 기반해 활동한다. 그래서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최소화하고, 신뢰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카디아이’(CADIAI)가 대표적이다. 카디아이는 1974년 해고된 유치원 교사, 간호사 등 30여명이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시작했지만, 1991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돌봄노동자들의 권익에서 나아가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돌봄의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가사 서비스 노동자와 이용자가 함께 조합원으로 모인 가사 서비스 협동조합 사례가 눈길을 끈다. 서울 마포에 자리한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하 울림두레돌봄)은 친환경 먹거리를 거래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울림두레생협이 만든 사회적협동조합이다. 2019년 출범한 울림두레돌봄은 지역에서 돌봄을 소비하는 ‘수혜자’였던 주민들이 돌봄 제공자로 참여한다. 가사돌봄 사업의 시작은 돌봄이 필요한 곳으로 연결을 해주는 데서 출발했다. 홀로 육아를 감당해야 했던 여성, 다급한 상황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 관심과 돌봄이 종일 필요한 독거 어르신 등 도움이 절실한 이용자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자를 연결해주는 ‘생활 응원’ 캠페인이 시작이었다. 돌봄의 실천은 돌봄기금인 ‘천원기금’ 모금으로 이어졌다. 조합원들의 작은 정성으로 시작한 기금은 10년간 1500명의 조합원이 참여해 1억9800만원을 모았다. 돌봄기금은 지역의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돌봄노동자를 육성하는 활동에 사용됐다. 돌봄노동자와 이용자 간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울림두레돌봄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2019년 더디지만 촘촘하게 짜나간 돌봄의 관계망을 기반으로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이제 설립 만 3년차에 접어든 울림두레돌봄은 가사 돌봄부터 아이 돌봄, 어르신 돌봄(방문 요양, 방문 목욕) 그리고 서울시 돌봄에스오에스(SOS)(사고와 질병으로 도움이 필요한 시민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까지 다양한 돌봄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지역사회로 확장된 돌봄의 관계망

지난해 울림두레돌봄은 ‘돌봄 활동의 첫 단추는 가사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고은주 이사장은 “일상생활의 가장 기본은 가사 서비스예요. 사람이 아프고 운신이 힘들어지면 가장 먼저 손에서 놓게 되는 게 청소와 정리정돈이거든요. 하지만 생활 속에서 너무 익숙하고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 인식이 높지 않다 보니, 가사 서비스를 중요하게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며 “울림두레돌봄은 가사가 돌봄의 시작이라는 가치를 조합원들과 함께 지역에서 실천하고자 한다”며 의지를 밝혔다. 울림두레돌봄이 자리한 서울 마포구는 수많은 가사 서비스 플랫폼기업의 주요 시장 중 하나다. 기술, 자본력이 풍부한 플랫폼기업과의 경쟁 상황에 놓인 울림두레돌봄은 지역사회 다양한 단체와 협력하며 이러한 어려움을 풀어가고 있다. ‘마포구 서로돌봄 안심주택(가칭)’ 사업도 그중 하나다. 오는 7월 말 준공이 예정된 ‘서로돌봄 안심주택’은 보건복지부 지역사회통합돌봄으로 마포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공공주택 사업이다. 시설이나 병원에 머물러야 할 정도의 중증 환자는 아니지만, 독립적 일상생활이 어려워 회복이 필요한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주택의 수탁기관으로 울림두레돌봄이 선정됐다. 공간 운영과 입주자 관리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은 울림두레돌봄은 앞으로 이 공간에서 ‘의료-돌봄-자치’를 결합한 통합돌봄을 실험할 예정이다. 김미정 마포구 복지정책과 돌봄지원팀장은 “울림두레돌봄은 그동안 지역사회의 돌봄 체계 마련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경제조직들과 연대해왔다”며 “기존의 관계망을 바탕으로 입주자들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 지원을 연결하는 한편, 서로 돌봄의 관계망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울림두레돌봄은 고령친화무장애주택협동조합 등 기존의 마포돌봄공동생산사업단과 최근에 창립한 마포돌봄사회적협동조합 등과 함께 입주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사회적경제 방식과 적극 연계할 예정이다. 가정 돌봄에서 시작했지만, 가정을 넘어 지역사회를 돌보는 활동으로 점차 돌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신뢰와 전문성으로 경쟁력 확보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맞벌이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사 서비스 이용 시 아쉬웠던 점으로 △가사 서비스 종사자 신원보증(32.4%) △소개 기관의 책임 있는 서비스 부족(26.7%) △종사자의 잦은 변경(15.7%)을 꼽았다.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 제공되는 가사 돌봄 서비스의 특성상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요청이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살림서울생협의 아이 돌봄 사업도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조합원의 요청에서 시작했다. 서울 전역에서 30만명에 이르는 조합원이 가입한 한살림서울생협은 2013년 돌봄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생협 조합원을 대상으로 시작한 돌봄 서비스가 국공립 어린이집 수탁(2015년), 아이 방문 돌봄(2016년), 어르신 방문 돌봄(2017년)으로 규모가 커졌다. 급증하는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2020년 ‘돌봄선생님’과 서비스 이용자가 함께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한살림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하 한살림돌봄)을 창립했다. 이승언 한살림서울 돌봄사업부 부서장은 돌봄 사업이 빠른 시간 내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을 조합원 간 믿음과 신뢰에서 찾았다. “같은 조합원이라는 공통의 배경이 있어서, 돌봄노동자와 이용자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살림돌봄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돌봄 서비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돌봄선생님으로 활동하기 위한 사전 교육과 채용 인터뷰를 대면으로 진행해 신원보증의 확실성을 더하고, 주기적으로 서비스 이용 만족도를 전화로 모니터링하며 고객들의 만족도를 관리했다. 한살림돌봄은 돌봄노동자들의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선불제 방식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이용자는 돌봄선생님과 함께 다음달 근무표를 작성하고, 근무 일정에 따른 비용을 선지급하는 방식이다. 도입 초기, 선불제에 익숙지 않은 이용자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돌봄선생님의 안정적 일자리는 결국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를 이해한 조합원들이 늘며 현재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밖에도 채용, 교육(보수 교육), 중개, 사후 모니터링 등 돌봄 중개 과정을 체계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조직이 나를 지켜준다는 안정감을, 이용자들은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돌봄 서비스 기반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조직의 존재 이유를 ‘돌봄을 통한 지역공동체, 지역공동체를 통한 돌봄의 관계망 만들기’에 둔 한살림돌봄이 기대하는 돌봄의 다음 단계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와 함께 만드는 통합돌봄에 있다. 어르신돌봄센터가 있는 서울시 도봉구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단체들과 연대를 위한 활동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가사근로자법은 정부의 인증을 받은 가사 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사회보험과 최저임금을 보장하도록 한 법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사회적경제 가사 서비스 제공기관은 다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1998년부터 실업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실직자에게 취업 알선, 복지 지원 등을 제공하며 가사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역할해온 노동실업광주센터의 정향자 대표는 “그동안 릴레이 1인 시위, 서명운동, 각종 캠페인 등으로 가사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기초 토대를 어렵게 닦아놓았다”며 “가사근로자법 시행 이전부터 가사 서비스 시장의 규율을 만들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짜온 조직들이 법 시행 이후에도 제 몫을 하며 함께 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효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jinnytr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