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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무섭다”며 별점테러…폭주하는 온라인 증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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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인사이드 아웃>(2015)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도 500만명 가까이 되는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춘기를 통과하는 한 여자아이의 머릿속에서 감정을 제어하는 다섯개의 의인화된 감정(분노, 불안, 슬픔, 역겨움, 기쁨)이다. 어느 날 기쁨과 슬픔을 관장하는 감정들이 제어 본부를 이탈하면서 일이 벌어진다. ‘영화는 영화로’ 볼 일이겠지만 다음과 같은 신화의 오류는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머릿속이든 심장이든 인간의 몸 어딘가에 날 때부터 내재한 몇가지 원형적, 근원적 감정이 일정한 조화를 이루어 긴장감, 수치심, 행복감, 설렘 등 특정한 감정을 발동시킨다는 신화 말이다.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에 따르면 그러한 실체적인 원형적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내외부적 자극에 신체가 반응으로서 느끼는 쾌감과 불쾌감뿐일 것이다. 우리가 겪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위와 같은 특정한 감정들은 신체의 쾌감과 불쾌감에 대한 나름의 해석의 산물이다. ‘나름의’라고 말한 것은 신체의 쾌감과 불쾌감을 해석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른 양상은 주로 당대의 문화, 지역의 문화와 교육 여하에 따른다. 내가 ‘표현’한 감정, 진짜일까 리사 펠드먼 배럿은 예컨대 분노라는 감정을 ‘익히게’ 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쓴다. 어린아이는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하는 식으로 신체에 어떤 불편함을 느낄 때 울거나, 먹던 음식을 뱉거나, 미간을 찌푸리거나, 손발을 휘두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한다. 보호자는 아이를 보고 ‘화났니? 화내지 마’라고 말하며 달랜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신체 상태와 그에 대한 반응 및 표현으로 취한 행동을, 보호자가 입 밖으로 낸 ‘화-난’이라는 소리와 연결한다. 이렇게 특정 신체 상태와 행동과 특정 음성을 연결하는 데이터가 누적되고 여러 차례 착오와 수정을 거치면서 아이는 ‘화’라는 어휘를 익힌다. 마침내 아이는 불편한 신체 상태와 다양한 표현 형태 즉 찌푸린 표정, 질끈 감은 눈, 꽉 다문 입, 크게 휘두르는 손발, 고성, 침묵 등 유사성이 없거나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 것들을 ‘화’라는 어휘의 범주 안에 넣게 된다. 그렇게 분노라는 감정이 구성된다. 그 뒤부터는 경험과 교육에 근거하여 특정 상황과 맥락 아래 자신이 겪는 어떤 변화를 분노라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감정에 관련하여 어휘력의 중요성이 강하게 강조되어야 한다. 단순한 수준의 어휘력을 구사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 대한 성찰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 속이 살짝 불편한 상태라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이 상태를 으레 긴장감으로 해석한다. 긴장이라는 어휘를 학습할 때 함께 데이터로 누적한, 그 어휘를 둘러싼 맥락과 신체 상태와 많은 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똑같이 속이 불편한 상태인데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설렘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만약 설렘이라는 어휘를 학습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따라서 그 상황과 상태에 대한 인식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는 데 실패한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긴장감과 다르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해석할 공산이 크다. 이런 식으로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할 기회를 우리는 얼마나 더 박탈당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2년 전 ‘사흘 해프닝’을 기억할 것이다. 사흘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쓰냐며 계산도 못 하냐는 조롱, 왜 어렵게 ‘한자어’를 쓰냐는 볼멘소리까지, 요즘 사람들의 어휘력을 진지하게 의심케 하는 일이 있었다. ‘금일’과 ‘금요일’을 헷갈려서 낭패를 봤다는 사례는 끝없이 나온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가 아주 조금이라도 생소한 한자어를 쓰면 ‘간첩이냐’, ‘중국인이냐’라는 댓글이 달린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 영화 화면 갈무리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 영화 화면 갈무리

참교육? 맥락없는 급발진 요즘 젊은이들의 어휘력과 관련해서 이런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우려가 제기되는 문제가 유튜브, 스트리밍 방송에서의 어휘 구사다. 조회수에 사활을 거는 상당수 유튜브 방송은 속도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서의 감정 표현은 지극히 즉각적이고 반사적이고 기초적이다. 5초에 한번씩 욕설을 섞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무언가가 좋으면 호들갑을 떨며 ‘미쳤다’를 연신 외쳐대고 무언가 안 좋으면 있는 힘껏 증오를 발산한다. 가운데는 없다. 반사적인 좋음과 싫음의 어휘만 접하는 사람은 그만큼 표현력도 빈곤해진다. 표현(expression)력이 빈곤해지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상(impression)에 대한 성찰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조금이라도 기분이 언짢아지면 감정은 즉각적으로 싫음, 나쁨이 되고 대상에 대한 공격성으로 ‘급발진’하여 응징의 정서를 형성한다. 이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심각해지면 본인이 원해서 공포영화를 봐놓고 ‘너무 무섭다’는 이유로 혹평과 별점 테러를 가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기분을 약간 언짢게 만든 것들에 대한 가혹한 응징의 정서는 잊을 만하면 인터넷에 바이럴을 타는 온갖 ‘맘충’, ‘잼민이’, ‘참교육’ 경험담 및 목격담이 방증한다. 당장 자신의 기분이 약간 상한 것이 감정 해석의 절대적이고 가장 중요한 제일 기준이 되어버린 탓에 성장하는 존재, 초보들의 약간의 서투름과 착오에 반사적으로 싫음부터 표시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졌다. 이런 사람들은 급기야 어린아이들의 ‘지체된 성장’을 저주하다가, 오히려 그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퇴행하기도 한다. 오직 좋음과 싫음만 남은 일차원적 인간,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어떤 장애물에 의해 가로막히면, 단지 분노를 표하기만 하면 보호자가 나타나서 장애물을 치워줄 거라 기대하는 유아기적 인간으로의 퇴행 말이다.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