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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길은 내가 만드는 것[영감 한 스푼]

낯설고 힘든 순간에 만나는
살아있는 나의 모습

여러분 안녕하세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아시나요?

시인이 20대 중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쓴 이 시는 모든 사람의 앞에 있는 두 갈래 길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의 앞에는 똑같이 아름다운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둘 다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모든 사람은 두 길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고, 누구도 두 길을 한 번에 걸을 수는 없습니다.

둘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하죠. 시인은 풀이 더 무성한 길을 걷기로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 선택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하겠노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시는 인생에서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상황,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펼쳐지는 삶의 흔적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가지 않은 길’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 흥미롭죠?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내가 그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미련 섞인 상상을 해보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보자고 오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꼭 주어진 두 갈래 길 중 하나만 가야 하는거야? 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더 나아가서, 길이 없다고 해도 나는 내 손으로 그곳에 레드카펫을 펼치고라도 당당히 걸어갈거야! 라고 한다면요?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주영 작가의 예술 세계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 만나 보겠습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길은 내가 만드는 것

제6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 김주영

1. 김주영 작가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유랑하는 ‘노마드’(유목민)이라 이야기 하고, ‘길에서 예술을 줍는다’고 말하며 한 곳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2. 그 기저에는 더 이상 한 가지 개념으로 개인을 규정할 수 없는 시대적인 변화,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겪어야 했던 개인적인 고통이 있다.

3. 그러나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을 새롭고 낯선 환경에 밀어 넣으면서, 그곳에서 살아 있는 예술을 건지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 길 없는 곳에서 편해지는 작가


제가 김주영 작가와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것은 2년 전, 그녀가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입니다. 보통 전시가 열리면 보도자료를 받고, 간담회에 가서 취재를 하게 되는데요. 이 전시는 그러한 사전 정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메일로 작가가 직접 보내준 작품 사진과 전시 전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작품에 반한 저는 바로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었고, 작업실에 찾아가 작품 세계를 알게되고 기사로 다루게 되었습니다.

당시 기사를 준비하며 저의 기억에 깊이 남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드릴게요.

전시 기사를 쓰려면 사진이 꼭 필요합니다. 사실 글보다 사진 한 장이 독자들에게 전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전해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님께 직접 사진 요청을 하면서, ‘도록에 있는 것과 같은 사진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원한 사진은 조명을 사용해 작품이 극적으로 드러나도록 연출된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김주영 작가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퉁명스럽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바닥에 빛이 반사되고 번쩍번쩍한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원했던 사진 속에는 설치 작품이 있었고, 작품 속에 녹색 네온 사인이 매끄러운 미술관 바닥 표면에 반사되고 있었거든요. 그 말 한마디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작품을 다른 식으로 포장하려고 했다는 걸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작품 자체가 중요한 건데 왜 과장하려고 했을까? 기사 내용만으로는 자신이 없는 건가?”

이 해프닝으로 짐작 되시나요? 김주영 작가는 그 어떤 허황된 것도 없이 철저히 땅에 발을 붙이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예술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김주영, 꽃수레. 2022년
김주영, 은자의집2. 2022년

그런 작가는 스스로를 ‘길에서 예술을 줍는다’고 하고, ‘지구가 나의 아틀리에’라고 말합니다. 예술을 상상할 때 누군가는 값비싸 보이는 무언가를 떠올리겠지만, 그런 예술은 19세기에 막을 내린지 오래입니다.

위 작품 ‘꽃수레’를 보시면 ‘길에서 줍는다’는 의미가 조금 와닿을 수도 있겠습니다. 농가에 가면 볼법한 수레 위에 흙이 가득 담겨있고 그곳에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마치 죽은 기계에서 생명이 자라난 것 같은 신선한 충돌이 보이시나요?

이 광경 위로 설치된 모니터에는 작가가 2016년 남인도를 찾았을 때 한 사원에서 목격한 풍경이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습니다. 김주영 작가는 1990년대부터 인도, 티베트, 몽골, 네팔, 아프리카를 다니며 길 위에서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을 했습니다.

그녀는 ‘운동화와 청바지만 남기고’ 때로는 쫄쫄 굶고, 빈 건물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도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답니다. 저는 그런 그녀의 삶을 보며,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길 없는 곳’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나에 관해 규정된 것이 하나도 없는 곳. 내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 곳에서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허례허식을 벗어내고 그저 내 몸뚱아리 뿐인,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외롭고 무섭기만 할 것 같은 기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기분을 그녀는 왜 일부러 찾아 떠난 걸까요?

○ 내 이름은 김주영이 아니었다


2년 전 김주영 작가님과 처음 통화했을 때, 그녀는 제게 그렇게 유목민처럼 떠돌아 다닌 이야기를 하나씩 해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똑같이 ‘왜 그렇게 떠돌아 다녀야만 하셨나요?’라고 물었고, 그 때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내 본래 이름은 김주영이 아니에요.”

물론 그녀가 작가로서 길을 떠나기까지는 다른 많은 요인들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프랑스 유학 시절, 철학자 질 들뢰즈를 만나 그의 사상에 대해 알게 된 것이나, 작가로서 스스로를 낯선 곳에 던져보려는 의식 같은 것들도 있겠죠.

그럼에도 저의 질문에 바로 나온 단 한 마디 대답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말 뒤로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펼쳐졌습니다.

작업실에서. 김주영 작가

김주영 작가는 1948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홍익대 서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홍익공업전문대 교수로 10년 간 재직하다 1986년 파리로 떠납니다.

이 무렵 김주영 작가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어디론가 증발해버렸고, 자신의 본명이 ‘현선영’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6.25 전쟁 무렵 좌익활동을 했던 아버지는 연좌제로 가족이 고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라져버렸고, 어머니는 철저히 그 사실을 숨겼던 것입니다.

태어날 땐 쌍둥이였지만, 동생은 영양부족으로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했던 어머니는 딸에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마라면서 크레용을 쥐어주고 혼자 놀도록했습니다. 커서 알게 된 엄청난 진실에 김주영 작가는 내 인생은 가짜인가 생각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김주영 작가의 작업노트

내가 믿고 있던 사실들, 그리고 나를 규정하는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 그 고통을 쉽게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상상하기 어려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도 자신의 삶이 ‘뿌리를 잃어버린 것 같다’며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내곤 합니다.

사실 한반도에는 냉전을 온 몸으로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수십 년 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고집을 피우거나, 회피하면서 살아간다면 김주영 작가는 그 경험을 직시하며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또 농경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조건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상이 규정하는 내가 아니라, 진짜 나의 자아를 찾아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고요. 그런 시대적인 변화를 김주영 작가는 예술가로서 좀 더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 삶을 ‘유목민’으로서 좀 더 적나라하게 살아간 것은 아닐까요?

○ 길은 내가 만들고, 문은 내가 열고


이런 관점에서 김주영 작가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키워드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문’입니다.

우선 ‘길’은 그녀가 예술을 줍는 곳이기도 하죠. 그리고 김주영 작가가 낯선 곳으로 떠났을 때 하는 퍼포먼스에서도 이 길은 자주 등장합니다.

김주영, 마음의 행로-무지개 길 따라. 2011년

이렇게 박수근미술관 전시장에서 색동천과 광목천으로 펼쳐진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길들은 김주영 작가가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떠난 어느 곳에서 빈 땅 위에 펼친 뒤 맨발에 먹을 묻히고 발자국을 찍어 나간 흔적들입니다.

‘없던 곳에 만들어내는 길’의 의미, 이해가 되시나요?

작가는 세상이 정해준 ‘나’로부터 벗어나 낯선 곳에 던져져 아무것도 없는 내가 됨으로써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정해준 두 갈래 길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 광목천을 펼치고 그 위를 걸어감으로써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 것이지요.

그 다음 ‘문’의 시적인 의미를 아래 전시장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김주영, 비원으로 가는 길. 2022년

박수근미술관 현대미술관의 세 번째 전시실을 가득 채운 이 설치작품은 박수근의 ‘나목’에 바치는 헌사이자, 1990년대 김주영 작가가 토탈미술관에서 선보였던 개인전 ‘동구밖’의 변주였습니다. 저도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 전시를 다른 형태로나마 다시 보아서 정말 좋았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낡은 문들이 꼭 뒤에 누군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합니다. 그런데 이 문들은 벽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매달려 있죠? 이렇게 고정되지 않은 문의 모습이 ‘희망’으로 보였습니다.

즉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럽고 막막할지라도, 언젠가는 나의 힘으로 허공에 문을 그려넣고 그 문을 열고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같았다는 것이지요.

이 문의 행렬을 따라 안쪽으로 나아가면, 흰 광목천이 신비롭게 펼쳐져 있고 그 안에는 나무 한 그루가 빛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인생이 궁극적인 결과가 없는 끊임없는 과정이고, 그 안에서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 삶일지라도. 그 과정 속에는 이렇게 빛나는 희망이, 비록 순간일지라도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저에겐 느껴졌습니다.

김주영, 여인의 마을. 2001-2018년

사실 이렇게 정직하게 삶에서 우러나오는 예술을 하는 작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기사를 쓰면서 멋져 보이는 사진을 고르려고 했듯이, 누구나 자기를 표현할 때 꾸미려는 본능이 일어나고, 과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김주영 작가도 학교에서 배운 기교로 ‘예쁘게 만드려는 것’을 절제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연 속에 길 속에 있는 것들을 따라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면서요. 그럼에도 정직한 삶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예술가의 모습을 통해, 정직한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러면 나의 길과 문도 조금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전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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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