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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국가재산 파수꾼’ 검사의 퇴장

유일한 공판·송무분야 1급 공인인증검사(블랙벨트)이자 2014년 6월 이후 7년간 세월호 사건 국가소송수행단장으로 일해온 홍효식(63·사법연수원 19기) 검사가 9일 32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한다. 홍 검사가 6일 서울고검 검사실에서 공직 인생을 돌이키며 웃고 있다. 윤성호 기자

검찰 내 유일한 공판·송무분야 1급 공인인증검사(블랙벨트)이자 2014년 6월 이후 7년간 세월호 사건 국가소송수행단장으로 일해온 홍효식(63·사법연수원 19기) 검사가 9일 32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한다. 주목받지 못하는 ‘깡치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고 법리를 만들어 가며 국가송무를 대리한 결과 그가 지켜낸 국가재산은 10조원을 넘는다. 이런 그의 정년퇴임식은 7일 서울고검 소회의실에서 일부 간부만 참석하는 형태로 열린다. 홍 검사는 6일 국민일보를 만나 “검사 생활 내내 거창한 것을 싫어했다”고 말했다.

홍 검사는 90년 3월 부산지검에서 검사 인생을 시작했다. 남원에서 비리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에 성공하자 ‘3학년’ 때 서울지검 형사3부로 발령이 났다. 당시 형사3부는 강력 사건들이 몰려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부서였다. 94년의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 사건, 지존파 사건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처리됐다. 그해 말 최진실 매니저 배병수씨 살해 사건도 그가 처리했다. 홍 검사는 “가는 곳마다 ‘깡치 사건(품이 많이 들지만 빛은 보지 못하는 사건)’을 도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95년부터 서울지검 송무부에서 일했다. 이때 서울 강남구 자곡동 토지 3만평 환수에 성공했고, 이후 국가송무 전문가의 길을 걷는다. 이 땅은 일제강점기 한 개인이 일본인에게 돈을 빌리며 근저당을 잡혀 경락된 토지라서 국가재산에 해당했다. 하지만 그 후손이 88년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 말소 등기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상황이었다. 송무부에 부임한 홍 검사는 ‘점유취득 시효’를 주장하며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제기, 이 땅이 국유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국가의 땅을 개인이 사실상 20년 이상 점유하면 소유권 이전이 이뤄진다”며 국가가 번번이 패소하던 논리를 역발상한 성과였다. 재심에서도 승소가 확정됐다. 환수한 자산은 당시 시가로 1000억원대, 현재 가치로는 수조원이다. 이 토지는 현재 보금자리주택 지구가 돼 있다. 홍 검사는 “당시 국민일보에서도 처음에는 ‘멍청한 검찰이 1000억대 국가재산을 날렸다’는 5단 기사를 썼던 일인데, 결국 사필귀정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가 서울지검 송무부에 부임할 때에는 국가의 패소율이 40% 후반대였다. 이 숫자는 그가 떠날 때 20%대가 됐다.

유일한 공판·송무분야 1급 공인인증검사(블랙벨트)이자 2014년 6월 이후 7년간 세월호 사건 국가소송수행단장으로 일해온 홍효식(63·사법연수원 19기) 검사가 9일 32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한다. 홍 검사가 6일 서울고검 검사실에서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 윤성호 기자

성과를 인정받은 그는 96년 법무부 송무과로 옮겼다. 서울지검에서 근무한 검사가 곧장 법무부로 가는 일은 없던 시절이었다. 홍 검사는 법무부 송무과에서 국가배상법상 배상 기준을 라이프니츠식에서 현재의 호프만식으로 바꾸는 일을 했다. 98년 한나라당 의원들이 “김대중 대통령이 국회 동의 없이 국무총리서리를 임명한 것은 위헌”이라며 제기한 권한쟁의심판도 그가 국가를 대리해 각하 결정을 이끌었다. 홍 검사의 논리가 당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 그대로 인용됐다.

‘윤금이 사건’ 유족을 위해 미군으로부터 억대 배상을 받아낸 것도 그 때의 일이다. 직무상 과실이라기보다 개인의 범죄였기 때문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상 배상은 요원했다. 홍 검사는 “통닭을 들고 용산의 주한미군 법무장교를 찾아갔다”고 했다. 그는 “미군이 먼저 배상한 뒤 병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라”고 설득해 망자의 노모를 위한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이후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 법률보좌관을 지냈다. 2013년부터는 광주고검 송무전담 검사였고, 2014년 6월부터는 7년간 세월호사건 국가소송수행단장을 맡았다. 청해진해운이 한국해운조합에 든 보험 약관상, 선장 등에게 고의가 있거나 선박을 개조했을 경우에는 보험공제금 지급 면책사유가 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었다.

소송과 협상의 ‘투트랙’으로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압박하며 대응한 끝에, 국가는 2018년 말까지 1200억원에 달하는 공제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홍 검사의 국가소송수행단은 청해진해운 및 유병언 일가 등 총 127명에 대해 122건의 보전조치를 완료했다. 이준석 선장 등 사고책임자에 대한 구상금 청구 소송도 모두 제기했다. 그의 업무 수행은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의 송무 우수 사례로 수 차례 선정됐다.

홍 검사는 “무조건 국가의 것을 고집해서 국민을 피곤하게 하면 안 되며, ‘중간’을 잘 지켰어야 했다”고 돌아봤다. 국가를 대리한 홍 검사는 때로는 원고였고, 또 때로는 일부 유족으로부터 소를 제기당한 피고의 역할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변호사가 아니라 공익을 대표하는 검사였기 때문에, 국민의 이익을 적절히 보장하는 역할을 끝없이 고민했다는 토로였다.

그는 “도장만 찍는 검사가 아니었다”고 했다. 검찰 구성원들은 그만큼 끝없이 공부하는 검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조세 소송을 잘 하기 위해 60대의 나이에도 25만원을 내고 학원 ‘인강’을 신청했다. 중급·고급회계와 회계기준 수업을 듣는 것이다. 방대한 조세법(국세기본법, 법인세법, 소득세법, 부가가치세법, 상속세법, 지방세법, 관세법 등)에 대해 공부하고 법정에서 부딪힌 결과는 상속·증여세법 저서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가 2개월 만에 책을 쓰자 “검사도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법조인들이 놀라워했다.

홍 검사는 검사장 직함을 갖지 않고 퇴임한다. 그는 “가라는 곳에서 일하는 게 공직자의 직분”이라고 말했다. 법무차관을 지낸 동기도 있고 대검 차장이 된 동기도 있지만 가장 오래 검찰을 지켰다. 그는 “검사장은 1년에 10여명이지만, 공판·송무 1급 공인전문검사는 역대 1명”이라고 말했다. 퇴임 이후에는 힘든 이들의 국가 소송을 대리하는 역할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홍 검사는 “공직으로 얻은 경험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가 환수하거나 지켜낸 재산은 아무도 계량하지 못한다. 홍 검사도 따져보지 않았다며 “10조원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후배들은 “국가재산 파수꾼이 퇴임한다”고 했다. 그에게 조세 소송 경험을 살려 저서를 쓰길 권했다는 문찬석 전 검사장은 “홍 선배의 모든 밑바탕에는 인간애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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