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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아버지의 죽음…유가족의 ‘눈물’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 한마디조차 받지 못했어요. 아버지께서 평생 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마지막 날까지도 아프게 돌아가신 게 너무 가슴 아픕니다.”

“빈소에 가서 심심한 위로를 표하고 조문하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게 사과죠. 꼭 말로 ‘사과드립니다’라고 해야 사과하는 겁니까.”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근로자의 유가족들과 원청 건설회사 관계자가 서로의 입장을 호소하는 말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1시5분쯤 부산 남구 문현동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옹벽에 박힌 철심 제거작업을 하던 인부 정모씨(57)가 약 4m 20cm의 높이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소방대원과 구급대원들이 출동했을 당시 정씨는 뒷통수 부위가 3~4cm가량 찢어져 있었고 출혈이 있었다.정씨는 현장에서 이미 호흡과 맥박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 오후 11시30분쯤 숨졌다.

◇‘발을 헛디딘’ 추락사인 걸까…유가족이 제기하는 의문들

유가족들은 정씨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장에서 발견됐을 당시 정씨의 뒷통수 쪽에 찢어진 상처와 출혈이 생겼는데 안전모에는 이마 부위에만 피가 소량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정씨의 시신을 염습한 장례지도사 A씨는 “4~5m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착지하려고 시도하면서 무릎이나 팔이 다친 흔적이 있거나 보통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드는데 그런 상처도 없고 뒷목과 뒤통수에만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정씨는 두부 출혈과 목뼈가 부러져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정씨가 위에서 떨어진 낙하물에 맞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찰은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은 확보하지 못했다. 사고 현장 인근에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었으나 경찰은 당시 블랙박스 영상이 있는지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정씨가 추락한 지점에 대한 건설현장 관계자 진술도 계속해서 바뀌었다. 사고 당일 오후 1시5분 ‘(정씨가) 공사장 1m 높이에서 추락했다’던 최초 신고와 달리 회사 관계자들은 유가족에게 ‘2m 높이에서 추락한 것’으로 전달했고, 경찰은 4m 20cm 높이에서 떨어진 것으로 파악했다.

작업 도구나 흔적이 4m 20cm 높이에서 발견됐기 때문인데 실제로 정씨가 근무하던 장소가 맞는지 DNA 확인작업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은 허술한 초동조치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건설회사 관계자들로부터 ‘목격자가 없다’는 말만 들었던 유가족들은 추락 높이가 계속해서 뒤바뀐 점, 경찰이 부검을 권유하지 않았던 점도 모두 의심스럽기만 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는데…‘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없는 건설회사

유가족들은 정씨가 세상을 떠난지 열흘 이상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진심어린 사과’를 한마디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현장을 관리하던 원청업체 관계자는 취재진이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유가족의 입장을 전하자 “심심한 위로를 표하고 조문하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게 사과와 같은거죠, ‘사과드립니다’라고 사과해야 사과입니까”라며 “무릎꿇고 빌어야할 상황은 아니잖아요”라고 했다.

또 “하청업체 대표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후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유가족들로부터 감금과 폭행을 당했고 각서를 쓰도록 강요를 당해 형사고발까지 했다고 전해들었다”며 “그 사건이 정리되지 않으면 합의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가설물)설치도 단단하게 잘 돼 있고 난간대도 다 있다”고 덧붙였다.

하청업체 대표는 빈소에 조문을 갔다가 정씨에 대한 추락 사망사고에 대한 위로금으로 2억원을 지급하겠다는 각서를 유가족에게 써준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유가족은 분통을 터뜨린다. 정씨의 아들 B씨는 “빈소 문도 열려있고 본인이 담배도 피우러 다녀왔는데 그게 무슨 감금인가”라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언성이 높아지면서 몸싸움이 있었지만 감금 폭행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원청 건설업체의 또다른 관계자는 “유가족과 하청업체 양쪽에서 합의를 해야하는 상황인데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다”며 “대화를 통해 자리를 만들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다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과라기보다는 회사(로고가 있는) 작업복을 입고 조문을 갔다는 것 자체가 입장을 이야기한 것으로 본다”며 “경찰조사 결과에 따라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이지, 나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던 하청업체 대표는 취재진의 전화와 문자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원청 건설업체와도 최근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 현장 안전관리 부실?…“제2의 아버지 안나왔으면”

원청업체 건설회사는 신축아파트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뉴스1>의 취재결과 가설물 안전관리가 허술했던 정황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현장 사진을 토대로 한국건설안전협회와 한국건설안전학회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업계 실무자들의 자문을 구해본 결과, 여러 문제점들이 확인됐다.

우선 정씨가 메고 있어야 할 생명줄(안전대)이 발견되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또 작업 현장에 있는 쌍줄비계 끝부분에 중간과 상부에 하나씩 모두 2개의 난간대가 설치돼 있어야 하지만 1개만 설치돼 있었다.

가설 계단에 안전 난간대도 없고 건물 내벽 쪽에 있어야 할 난간도 없었다. 추락방호망 또는 낙하물 방지망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업발판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다. 상부난간대와 중간난간대, 폭목(발끝막이) 등 3가지를 통해 작업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양쪽으로 견고하게 고정돼 있어야 하는데 현장 사진으로 봤을 때도 미비한 점이 육안으로 관찰된다는 것이다.

실제 해당 신축아파트 공사현장에서 근무했다가 그만 둔 한 작업자 C씨는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발판 흔들림이 많다”며 “옆에서 잡아줘도 흔들리고 바람이 불수록 흔들리는데 작업장 안전이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건설안전학회 관계자는 “일반 강관비계로는 작업발판의 안전성을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운데 강관비계를 사용한 것 자체만으로 안전 난간대 설치에 한계나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서 시스템비계를 권장하지만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에서 중대조사팀을 파견해 정밀조사를 진행하면 모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확인될 사항들”이라며 “우리나라 안전수준의 격차는 빈부 격차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지난 2018년 업종별 사고사망자 현황을 살펴보면 건설업에서 485명(49.9%)이 목숨을 잃었다. 제조업 217명(22.3%), 서비스업 154명(15.9%), 기타산업 115명(11.8%)과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건설협회의 실무 관계자도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단가가 비싼 시스템비계를 사용하면 남는 게 없으니 사용하지 않는 현장이 많다”며 “형식적인 교육체계를 개선하고 관리자들의 현장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현재까지 장례절차도 멈추고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정식 사과와 사고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아버지와 같은 제2의 피해자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며 “건설업체들은 공사 수주를 받으면 빨리 끝내려 하면서도 돈은 아끼다보니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고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수칙도 제대로 준수하지도 않는다”고 호소했다.

(부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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