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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단독] 김정환 시인·이호웅 전 의원 등 46명 법원, 긴급조치 9호 피해 국가배상 판결

구속 44년만에 ‘정신적 손해’ 배상
법원 “사유 고지 못받고 체포된 뒤
영장도 없이 구속돼 진술 강요당해”

긴급조치 9호 발동 44주년인 지난 5월13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긴급조치사람들 등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모여 ‘긴급조치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긴급조치 9호 발동 44주년인 지난 5월13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긴급조치사람들 등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모여 ‘긴급조치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대규모 학생시위를 벌였다가 감옥살이를 한 김정환(65) 시인과 이호웅(70) 전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44년 만에 국가배상을 받게 됐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정권을 비방하면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는 것을 허용한 위헌적 조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진상범)는 김 시인과 이 전 의원 등 46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김 시인에게 6600만원, 이 전 의원에게 6200만원을 배상하도록 판단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 시인 등이 체포 사유나 변호인 선임권에 대한 고지를 받지 못한 채 체포됐고 영장도 없이 구속됐다. 그 뒤에는 폭행과 협박에 의한 진술이 강요됐다”며 정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1975년 4월11일 서울대 농대 대강당 앞 연단에 오른 축산과 4학년 학생 김상진은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는 ‘양심선언문’을 읽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달 뒤인 5월22일 김 시인과 이 전 의원 등이 김상진을 애도하는 시위를 벌였다. 김 시인은 학생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애도시 ‘4월 진혼가’를 낭독했고,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행진하며 ‘긴급조치 9호를 철폐하라’는 이른바 ‘오둘둘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시위 참가 학생 300여명을 연행해 56명을 구속했다. 김 시인도 영장 없이 체포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700일이 넘게 구금됐다. 김 시인 등은 사건 발생 38년 만인 2013년 9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앞서 이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해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무효”라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이들이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 등을 받았으므로 ‘재판상 화해’가 성립돼, 배상액을 따로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2015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전원합의체가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 지급 결정에 동의하면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한 판단이 근거가 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다른 결정을 내놓으면서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헌재는 “민주화보상법상 이뤄진 손해보상에는 정신적 손해가 포함되지 않았다.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헌재 결정에 대한 하급심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법원은 지난달 3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다른 사건에서 “법률 해석의 판단은 법원의 권한이므로 법원이 헌재 결정을 따를 필요는 없다”며 2015년 대법원 판단을 받아들여 소송을 각하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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