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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유럽에 ‘끔찍한 에너지대란’… 그린플레이션 공포

지난달 27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 있는 석탄 화력발전소 냉각탑에서 하얀 수증기가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유럽이 전례 없는 에너지 대란에 휩싸였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한 달 가까이 지속된 전력 부족 사태 탓에 일부 지역의 철강, 섬유 업체가 정상 가동을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아 올 겨울 난방비와 각종 제품값이 줄줄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평가받던 석탄 값은 수요가 폭발해 연일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최근의 에너지 대란은 석탄 가격 상승과 천연가스 수요 증가, 친환경 정책으로의 전환 여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기후 변화에 대응해 탄소 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그린플레이션’(친환경을 뜻하는 그린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국은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최악 전력난 중국, 9월 생산자물가지수 역대 최고

중국 내 석탄 가격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며 치솟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북부 톈진항의 석탄 부두에서 적재 장비가 야간에 가동 중인 모습. 신화연합뉴스

중국은 저장성, 장쑤성, 광둥성 등 공장이 몰려 있는 지역에선 9월 이후로 제한 송전이 이뤄지고 있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낮 시간에 전력 공급을 끊고 야간에만 공장을 가동하게 하는 식이다. 중국 정부는 난방 수요가 많은 겨울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력난이 금방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전력난은 물가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7% 상승했다고 밝혔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6년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업종별로 보면 석탄 채굴 출고가가 74.9% 급등했고 석유·천연가스 채굴(43.6%), 석유·석탄 등 연료 가공(40.5%)의 상승폭이 컸다.

같은 기간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7%로 낮은 수준이지만 결국 시차를 두고 오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로이터통신은 “에너지 소비 억제와 원자재값 상승 여파로 중국의 생산자물가가 사상 최고치까지 올랐다”며 “이미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고전 중인 업계에 압력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31개 성·자치구·직할시 가운데 20여곳에서 전기 공급을 제한했는데도 전력난이 해소되지 않자 결국 전기료 인상 카드를 꺼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12일 석탄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 요금을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내용의 ‘석탄 발전 전기요금 시장화 개혁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현재 중국은 석탄 화력 발전 전기 중 70%에 대해서만 시장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 또 중국 내 상업용 전기 사용자의 44%만 시장 가격으로 전기를 써왔다. 나머지는 정부가 정한 고정 가격에 전기를 이용했다는 의미다.


리커창 중국 총리(왼쪽)가 지난 12일 베이징에서 오윤엘덴 몽골 총리와 화상 회담을 하는 모습. 리 총리는 "상호 이익을 위해 몽골과의 석탄 교역 규모를 확대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신화연합뉴스

동시에 석탄 수입도 늘렸다. 헤이룽장성은 러시아에서, 저장성은 카자흐스탄에서, 지린성은 인도네시아와 몽골에서 석탄을 들여오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는 9월 석탄 수입량이 3288만t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76% 증가했다고 밝혔다.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석탄량은 지난해보다 무려 7배 증가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반중 노선을 분명히 한 호주에 대한 보복 조치로 석탄 수입을 금지했는데 이번 전력난을 겪으면서 항만에 보관 중이던 호주산 석탄 일부를 풀기 시작했다. 호주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대중 석탄 수출이 많은 나라다.

문제는 외국에서 수입한 석탄이 중국 전체 석탄 소비량의 10%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 내 전력 수요를 충족하려면 석탄 채굴을 장려하고 전기 요금을 올려 공급난을 해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 국가에너지국은 하루 석탄 생산량이 1010만t으로 지난 2월 이후 최대라고 밝혔다.


“친환경 정책 앞세운 미국에 석탄이 돌아왔다”

세계 최대 석유·천연가스 생산국인 미국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글로벌 벤치마크 유종인 브렌트유는 최근 배럴당 75달러를 상회하는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올해 초보다 45% 이상 오른 것이다. 북미 지역 벤치마크인 헨리 허브 천연가스도 연초보다 2배 오른 100만BTU당 5~6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미국의 휘발유 평균 소매가는 갤런당 3.19달러로 지난해 대비 50%가량 올랐다.
한 시민이 지난 10월 1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있다. 천연가스 부족 사태로 미국에선 석탄 사용량이 8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연합뉴스

미국이 전력 공급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천연가스는 생산량이 줄고 수출량은 늘어 가격 상승 압박이 더 크다. 미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천연가스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17% 감소했고 수출량은 41% 늘었다.

천연가스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석탄 사용량이 많아졌다. EIA는 올해 미국 내 석탄 사용량이 5억3700만t으로 지난해보다 23% 이상 급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석탄 사용량이 늘어나는 건 2013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친환경 정책을 추진한다던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석탄 연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며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에너지 업계에선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변화 대응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 정유 회사 카나리의 단 에버하트 최고경영자(CEO)는 “민주당이 제안한 3조5000억 달러 규모 예산 조정안에는 탄소 배출에 대해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있다”며 “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인플레이션 압박은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상승률이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9월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대비 3.4%로 연간 목표치인 2%를 훌쩍 넘어섰다. 에너지 물가 상승률은 17.4%에 달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현재의 물가 상승세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불황 탓에 에너지 가격이 떨어졌던 기저 효과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일시적 인플레이션에 과잉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연가스 시장이 위축되면서 가격 급등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거래소(TTF) 기준 지난 1월 메가와트시(Mwh)당 16유로였던 천연가스 가격은 현재 100유로 선을 유지하고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정우진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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