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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쥔 맨주먹, 사랑이 삶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어

<마틴 에덴> 속 연인들이 그들 사이에 놓인 계급적 크레바스의 시커먼 아가리를 보면서 느끼는 공포는 지금의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계급적 공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원작으로부터 111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 사랑 이야기가 파괴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공명 때문이겠다. 알토미디어㈜ 제공

<마틴 에덴> 속 연인들이 그들 사이에 놓인 계급적 크레바스의 시커먼 아가리를 보면서 느끼는 공포는 지금의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계급적 공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원작으로부터 111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 사랑 이야기가 파괴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공명 때문이겠다. 알토미디어㈜ 제공

“가진 것이라곤 심장뿐인 남자”가 어느 날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상류층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인생을 통째로 던져 성공을 좇지만, 정작 성공을 거둔 뒤에는 애초에 얻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잃고 결국 그 자신마저 잃는다는 이야기, 즉 <마틴 에덴> 및 지금으로부터 무려 111년 전에 출간된 잭 런던의 동명 원작소설이 취하고 있는 큰 틀 자체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통해 계승되고 변형되고 리모델링되며 면면히 다뤄져온, 새로울 것 전혀 없는 고전적인 틀이겠다. 이러한 카인드 오브 이야기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은 아마도 <위대한 개츠비>일 텐데, <위대한 개츠비>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 계층 급상승과 그 결과 얻게 되는 절망·좌절·환멸이라는 이 이야기 틀은 애초부터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라, 안 그래도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마음의 때목욕 및 정신적 전신마사지를 받고자 하는 뭇 관객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인 구조 또한 품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마틴 에덴’의 누나가 “네 글은 너무 슬퍼. 나라면 안 읽을 거야. 사람들은 웃고 싶어 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원리로. ‘내가 아는 (누추하고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는 마틴 에덴의 견해만큼이나 그의 누나의 견해 또한 충분히 존중받을 이유가 있다는 것이 이 칼럼의 언제나와 같은 입장이다만 그럼에도 <마틴 에덴>은 그 정도의 이유로, 또는 이른바 아트하우스라는 모호한 분류표에 대한 위화감 때문에 놓치고 넘어가기에는 심히 아까운 영화라는 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일단 사랑에 대한 영화로서부터. _________
사랑은 ‘동화나라 이야기’가 아니므로
잘생기고 총명하며 터프한 선원 ‘마틴 에덴’(루카 마리넬리)은, 하지만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맨주먹 청년이다. 그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부호 ‘오르시니’ 집안의 딸 ‘엘레나’(제시카 크레시)를 알게 됨과 동시에 사랑에 빠지고,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당신처럼 말하고, 당신처럼 생각하고 싶어요”라는 대사로 압축되듯, 마틴은 엘레나와 그녀가 속해 있는 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문법을 배우고, 맞춤법을 익히고, 책을 읽고, 그리고 마침내 맨주먹만으로 가장 빨리 ‘그녀와 어울리는 남자’가 될 수 있는 길인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훗날 그는 ‘작가’라는 목적지를 입력해준 것이 엘레나보다는 그의 재능과 충동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지만. 아무튼.
알토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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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러한 카인드 오브 이야기가 취하는 설정과는 달리 마틴의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엘레나 역시 마틴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총명함”과 “의지력”을 알아보고 그의 노력을 격려하고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녀의 격려에는 항상 “열정에 눈이 멀어 업계의 어려움을 간과해서는 안 돼요”라든가, “창작열을 채우면서 동시에 생계를 이어줄 직업을 얻어요” 등의 현실적 충고가 예외 없이 따라붙는다. 마틴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동지인 ‘브리스’(카를로 세키)의 말 그대로 그들은 동화나라 국민이 아닌 것이다. 하여, “닥쳐오는 실망에 대비하라”는 브리스의 예언 그대로 둘의 사랑은 결국 계층·계급적 크레바스에 빠지는 국면을 맞게 되는데, 이것 자체가 신기할 것은 없겠다. 이 귀결은 엘레나 어머니의 미소 끝에 예외 없이 떠오르는 걱정스러운/못마땅한 얼굴로 이미 처음부터 확정판결 나 있던 것이므로. 사실 핵심은, 이 균열의 존재 자체보다는 이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다. 예컨대 마틴과 엘레나 사이에 놓인 단차가 처음으로 드러나는 장면을 보자. 엘레나는 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마틴이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피아노 연주를 해보인다. 그 연주에 홀딱 빠져 있던 마틴은 연주의 말미에 열띤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짧지만 놓칠 수 없는 민망한 침묵 뒤, 김빠진 마무리 화음 두 개가 뒤따른다.(처음 클래식 공연장을 찾은 청중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 엘레나는 물론 마틴의 박수에 맞춰 얼마든지 연주를 마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러지 않았다. 계급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에 대한 마틴의 공포만큼, 그 문지방 너머에 발을 들이는 것에 대한 엘레나의 공포 역시 큰 것이다. 그것은 영화 중반, 마틴이 엘레나를 자신이 사는 동네, 즉 자신의 일상 속으로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연인들이 그들 사이에 놓인 계급적 크레바스의 시커먼 아가리를 보면서 느끼는 공포는, 지금의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공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원작으로부터 110년(2019년 영화 공개시점 기준), 영화가 설정한 시대 배경으로부터 얼추 60~70년은 떨어져 있는(<마틴 에덴>의 시대 배경은 대략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가 뒤섞인 상당히 모호한 시대다) 지금에도, 이 사랑 이야기가 파괴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공명 때문이겠다.
주인공 ‘마틴’ 역의 루카 마리넬리는 동경과 열망으로 가득 찬 청년에서부터 껍데기만 살아 있는 산송장까지, 한 인물의 역사 그 자체가 되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가속시켜 나간다. 알토미디어㈜ 제공

주인공 ‘마틴’ 역의 루카 마리넬리는 동경과 열망으로 가득 찬 청년에서부터 껍데기만 살아 있는 산송장까지, 한 인물의 역사 그 자체가 되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가속시켜 나간다. 알토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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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가 주지 못했던 감흥이 이곳에
그리고 거친 듯 섬세하고, 단순한 듯 여러 겹인 이 사랑 이야기에 흔치 않은 수준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틴 역의 루카 마리넬리가 보여주는 옥탄가 드높은 연기다. 동경과 열망으로 가득 찬 청년에서부터 껍데기만 살아 있는 산송장까지, 한 인물의 역사 그 자체가 되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가속시켜 나가는 그의 연기는, 단순백색인 듯 보이지만 붓질을 하는 순간 뚜렷하게 표면 질감을 드러내는 ‘젯소’에 비유할 만한 제시카 크레시(엘레나 역)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극장 천장을 뚫고 올라갈 듯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그의 연기를 두고 ‘젊은 날의 로버트 드니로’를 거론하는 세간의 평은 과연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 이 영화의 관람성 제고의 또다른 요소인 시각적 아름다움이 가세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고, 또 그만큼 생소할 수도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각종 기록화면(archive footage)들과 다큐멘터리 화면들의 등장이겠다. <마틴 에덴>에서는 ‘일반적인’ 극영화 장면들의 중간중간에 영사기 램프의 열기에 녹은 자국 그대로 보이는 오랜 기록 필름들부터 감독이 직접 촬영한 현재의 기록들, 그리고 다큐처럼 촬영된 연출 화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언뜻 짐작·걱정하시는 것처럼 난해하거나 난삽하지 않다. 오히려 이 화면들은, 원작의 배경인 20세기 초 샌프란시스코를 20세기 중후반(쯤 되는 모호한 시대)의 이탈리아 나폴리(부근의 어딘가 미지의 항구도시)로 바꿔놓은 영화의 선택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일반적인 극영화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시각적·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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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회화를 전공하고 영화는 독학한 감독(겸 제작·각색) 피에트로 마르첼로가, 그의 전작들(대표적으로 <늑대의 입>과 <상실과 아름다움>)을 통해 꾸준히 시도하고 실현해왔던 것들, 특히나 다큐멘터리-극영화 사이의 경계선 트기 및 회화-영화 사이의 경계선 트기를 일종의 중간결산처럼 집대성한 결과라 할 것인데, 그 시도가 이처럼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은 확실히 우리로 하여금 네오리얼리즘부터 베르톨루치까지 이어지는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들의 연장선 위에 이 영화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아 보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뭐, 그런 배경에 대한 사전 예습 같은 것 없이도 이 영화의 어법을 받아들이는 데는 아무런 지장 없겠다. 영화 도입부의 기록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이탈리아의 레닌’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나키스트라든가 하는 등등의 정보 역시.(사실 이탈리아 근대사 전문가도 아닌 보통의 한국인인 우리가 그런 거 알게 뭔가) “결국 영화를 본 뒤 집으로 가져가게 되는 건 뭔가요. 그건 어떤 장면, 어떤 순간 아닌가요? 그게 영화가 주는 진짜 마법이죠”라는 마르첼로 감독의 말 그대로, 관객들은 이 영화의 몇몇 순간들을 분명 집으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마틴 에덴이 읊조리는 하나같이 절절한 시구들와 함께 등장하는 화면들도 그렇거니와, 그의 상황·상태를 은유하는 ‘외다리 소년이 창문 너머로 올려다보는 불꽃분수’, 또는 마틴 에덴의 은인이자 친구인 ‘마리아’(카르멘 포멜라)가 그녀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말하는 장면 등은 그야말로 주머니에 넣어두고 만지작거리고 싶은 것들이다. 그중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틴이 사랑에 빠진 뒤 등장하는, 위태로운 듯 흔들리면서도 모든 돛을 활짝 펼치고 있는 범선의 기록화면, 그리고 이후 닥쳐드는 결정적 파국에서 절묘한 타이밍으로 다시 등장하는 그 범선의 화면인데, 여러분은 어떠실지. _________
110년이 지나도 생생한 질문
사실 이 파국을 불러오는 근본적인 동력인 정치사회적 긴장과 균열, 그리고 그에 대한 마우리치오 브라우치(시나리오 작가)와 마르첼로 감독의 고민이야말로 필자 개인적으로 <마틴 에덴>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었지만, 이 영화의 기초 관람성을 얘기하는 사이에 벌써 지면이 거의 소진된 관계로 아쉽게도 줄여야겠다. 아무튼 2019년 공개 당시 이 영화가 110 전 잭 런던의 소설에서 압착해낸 예언적 문제의식의 엑기스, 즉 ‘노예들은 그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 하지만, 결국 또 다른 지배자를 세울 뿐’이라는 파시즘과 스탈리니즘의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아우르는 문제의식, 그리고 집단주의에 맞선 개인(존중)주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등은 <조커>나 <언힌지드> 같은 분노영화들이 거론하려 했으나 장르적 분풀이에 갇혀 끝내 다다르지 못한 지점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 영화는 인류의 평생 숙제와 같은 이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마틴 에덴은 이 질문으로부터 아주 먼 곳을 향해 헤엄쳐 가지만, 질문은 그럼에도 유효하다. 질문 자체만으로도. 110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노예가 너무 많아진” 이 시대에.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뜨거워진 가슴이 좀처럼 식지 않았다. 이런 경험 얼마 만인가.
한동원 영화평론가.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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