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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사지서 도망간 곳 물 오염·악취… ‘돕는 손길’도 떠난다

지난 14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촌 16캠프 내부 모습.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철 패널과 대형 비닐 포장지로 지어진 집들이 늘어서 있다.

녹슨 양철 패널과 마대 천, 대형 비닐 포장지를 나무에 이어붙인 공간이 아이의 보금자리였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움막 틈 사이로 2살이 채 안 된 삼수우딘은 처음 햇살을 봤다. 아이는 2년 전 엄마 뱃속에서 미얀마 국경을 넘었다. 목숨 건 탈출을 함께한 난민들이 이웃이 돼 엄마의 출산을 도왔다. 고향이 난민촌인 아이에게 국적은 없다.

아이 건강은 가족 숫자에 따라 받는 식량 배급량에 의해 결정된다. 난민촌 밖으로의 이동은 제한됐고, 난민촌 내에는 일감이 없어 삼수우딘 가족은 구호단체나 NGO가 주는 식량을 받아 삶을 이어가고 있다. 부모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더 먹일 수 있는 건 없다. 집 밖에는 온갖 쓰레기 더미가 가득했다. 마땅한 배수 장치가 없어 폭우가 내린 뒤 해가 뜨면 물은 곧 썩었다. 악취 풍기는 오염된 물이 집 주변에 넘쳤다.

삼수우딘은 올해 초 집 안을 기어 다니다 끓는 물에 왼손을 집어넣어 화상을 입었다. 피부가 녹아내려 손가락을 펼 수 없게 됐다. 난민촌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지구촌구호개발연대(이사장 전병금 목사)가 지난 5월 아이를 발견해 겨우 수술을 받게 했다.

난민촌에서는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난민촌에서 태어난 삼수우딘이 지구촌구호개발연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은 왼손을 펼쳐 보이고 있다.

도망쳐온 낯선 땅에도 생명이 태어났다

미얀마 군부의 학살과 억압으로 촉발된 로힝야 난민 사태가 25일로 2년을 맞았다. 죽음을 피해 열흘을 걸어 도망간 곳, 콕스바자르는 농사지을 만한 땅이나 우물을 팔 만한 지하수가 없어 방글라데시 사람들조차 거의 살지 않던 척박한 땅이었다. 방글라데시 군대는 로힝야 난민들이 자국 내로 밀려들어 오지 못하게 총을 들고 난민촌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난민은 계속 불어 난민촌은 인근 야산으로까지 확대됐다. 현재 캠프 31곳에 100만명 가까이 정착한 것으로 추산된다. 잠시 머물 곳으로 생각했던 땅은 터전이 됐다.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방문한 로힝야 난민촌에서는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6, 7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아직 혼자 걷지 못하는 한두 살쯤 되는 동생을 데리고 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며 내는 웃음소리가 메마른 땅을 겨우 채워 넣었다.

지구촌구호병원 측은 난민촌에 현재 임산부가 10만명 정도에 달할 것으로 봤다. 이들 중에선 미얀마 군부 학살 때 성범죄를 당해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난민촌 관계자는 “성범죄를 당한 뒤 난민촌에서 출산한 경우도 많지만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쉽게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재난관리한국협회(에이팟코리아)도 난민촌이 형성된 직후 14캠프에 클리닉을 열었다. 이 클리닉에서만 지난달 19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에이팟코리아가 15캠프에서 운영 중인 클리닉에서는 지난 8개월 동안 모두 200여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그러나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실제 태어난 아이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의사 나오미(25·여)씨는 “문화적 이유 등으로 병원에 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대부분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데, 감염 문제가 심각하고 산후 과다 출혈 문제도 많다”고 말했다.

‘학살의 기억’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

콕스바자르는 2년 전 대탈출로 인한 어수선함은 사라졌고 대신 무기력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다가도 사태를 떠올리면 몸을 움츠렸다. 난민촌에서 이모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삼순 나하르(11·여)의 커다란 눈망울도 2년 전 상황을 떠올리더니 곧 그렁그렁해졌다. “아빠와 엄마가 죽는 것을 보고 이모 집에 뛰어갔어요. 그다음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나하르는 겨우 입을 떼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가족 중 나하르 혼자 살아남았다.

이모 죠리나 카툰(40)은 “동네에 1000명 정도 살고 있었는데 절반 정도가 죽었다”면서 “온 가족이 산에 숨어 살아남았다”고 했다. 학살 장면을 지켜본 나하르는 며칠 동안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카툰의 남편은 1년 전쯤 혈압이 올라 갑자기 사망했다. 병원 한번 가보지 못해 왜 아팠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누르 카이다(12·여)는 남동생 마흐맛 알롬(10)의 손을 잡고 학살의 현장을 탈출했다. 카이다는 “대낮에 군인들이 집에 와서 가족들을 바깥으로 끌어내더니 총으로 쐈다. 죽는 걸 직접 봤다”고 말했다. 카이다 남매를 키우고 있는 이모 아이샤스 디카(40)는 학살 때 남편과 헤어졌다. 디카는 “미얀마 사람들이 남편을 집 밖으로 끌고 가는 것까지만 보고 아이들과 조카를 데리고 정신없이 도망쳤다”며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학살 과정에서 부모 모두를 잃고 난민촌으로 넘어온 고아는 5000명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죽음을 피해 도망 왔지만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았다. 지구촌구호개발연대는 16캠프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캠프 내 200명 가까운 고아들 중 절반 정도를 데리고 있다.

진퇴양난의 로힝야

난민촌에선 지난해에만 8만6000명 정도 아기가 태어났다. 난민 인구는 늘어가지만 해결은 요원해 현지에서 철수하는 구호단체와 NGO들도 많아지고 있다. 15캠프의 경우 각국 NGO들이 운영하는 클리닉이 최대 8곳까지 있었는데 현재는 2곳으로 줄어든 상태다. 클리닉이 줄어들면서 남아있는 클리닉에 환자들이 쏠리고 있고, 부담이 커져 난민 상황은 열악해져 갔다.

최근엔 방글라데시 내부의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역시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빈국이어서 장기 난민촌에 대한 염려가 크다. 정부는 난민들이 방글라데시에 정착할 것을 우려해 난민촌 내 방글라데시 언어 교육도 금하고 있다. 난민촌 길목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국적의 A씨(42)는 “방글라데시는 좁은 땅에 이미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로힝야족보다 가난한 사람들도 많다”며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촌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 관계자들은 “미얀마도 방글라데시도 반기지 않는 상황이어서 마땅한 대책이 없다.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글·사진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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