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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전범(classic)을 추구하는 건축가 김승회

[효효 아키텍트-76] 인터뷰 서두에 자신이 1995년에 설립한 건축사무소 `경영위치`가 32명의 소장급 인재를 배출했음을 밝혔다. 대학교수이기도 한 건축가 김승회에게 `건축 교육자`로서 의미를 부여하자 나온 대답이다. 김승회와 같은 1980년대 전반기 학번들은 국내에서 선진적이고 현대적 건축 교육을 받은 1.5세대 정도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학교 교육을 포함해 건축학도들의 수준을 높여 실력 있는 건축가를 키워내는 걸 소명으로 알며 무의식적으로 연대하는 듯하다.

김승회는 테크놀로지를 많이 강조한다. 구조와 재료적인 실험을 많이 한다. 인터뷰 장소인 후암동 `경영위치`도 기둥이 세 개이고, 트러스트 구조다. 김승회는 한국 건축의 교과서라 불리는 김종성이 설립한 `서울건축(SAC)`에서 3년간 실무를 했다. 서울건축은 김수근의 `공간`과 더불어 당대 건축 사관학교였다. 1990년대에는 지역성을 반영하는 전국의 보건소 건축에 집중했다. 주어진 한국적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변화하려고 노력해왔다.

이화외고 증축 설계를 맡으면서 학교의 주인공인 학생들을 관찰하는 게 첫 번째 일이었다. 대학 입시제도는 학생들을 밤 11시까지 학교에 묶어놨다. 이 정도면 학교가 집이기에 휴식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증축관인 비전관은 기존에 일자형 백색 건물로 평범하게 서 있던 스크랜턴관을 ㄷ자 형태로 감싸 스크랜턴관과 비전관 사이 중정(中庭) 공간이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는 좁은 대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층마다 테라스를 내었다. 비전관의 복도 유리 입면에는 커튼월처럼 드문드문 색유리를 끼워넣었다.

서대문 쪽 정문 길은 학교 담을 끼고 나 있다. 담이 둘러싼 교사(校舍)는 주변 오피스 빌딩과의 조화, 여학생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커튼월 입면에 수평으로 형형색색의 루버(louver·지붕 창)를 적용했다. 다양한 색은 각기 다른 외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개성을 상징한다. 김승회의 예술적 건축 디자인, 아트워크(artwork)인 셈이다.

건축물은 시대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건축 목적에 충실한 당대 최고의 작품은 가까운 미래에도 전범(典範·classic)으로 평가받는다.

2019년, 2년 임기의 서울시 제3대 총괄건축가가 된 후 하늘에서 내려다본 북두칠성과 같은 별자리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서울은 건축적으로 많은 자산이 있다. 산과 강, 성(城), 기타 근대적 공간들. 이들 모두가 각자 고립돼 있어 시너지 효과를 만들지 못한다. 이 모든 걸 이어 각 자산 간 관계성을 부여하자는 주장이다.

서울은 1960년대~1980년대 급성장기에는 10년마다 250만명씩 인구가 늘었다. 건축적으로는 장소성, 재료, 구조들이 근·현대 구분 없이 뒤섞여버렸다. 이는 파편 및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건축가는 새로운 파편 및 흔적을 더한다. 다만 그 흐름에 나름 질서는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원거리 이동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는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사무실보다 주거와 일을 병행하는 집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집과 일터가 철저하게 분리된 산업사회에는 집은 오로지 잠자는 곳으로서 기능밖에 없었다. 집이 위치한 동네에 대한 재발견도 요구된다. 집과 동네 간 소통을 필요로 한다. 동네와 일상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더 늘어난다. 동네는 공공성을 지닌 건축이 있다. 교회가 대표적이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영동교회(2001)는 다세대·다가구가 밀집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필지는 불규칙한 사다리꼴이고 레벌 차이가 7m나 된다. 외관상으로는 붉은 점토 벽돌은 주변 주택가의 주조를 이루는 재료다. 동네 주민들이 다닐 수 있도록 광장을 길처럼 꾸몄다. 상부 본당 건물의 입면은 반투명 유리다. 김승회는 기독교에서 빛은 생명이고,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뜻을 잘 이해했다. 예배 공간을 그 빛으로 채우고 싶었다. 신자석은 부채꼴로 만들어 말씀, 즉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대하도록 했다. 교회가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예인교회, 열방교회 건축 작업을 했다.

산 경사지에 옹벽을 쌓아 지은 경기도 여주 주택(2010)은 39평에 지나지 않지만 서재, 침실뿐 아니라 작업실, 주방 등 크고 작은 공간이 11개나 돼 세컨드 하우스 못지않게 세컨드 오피스 성격도 갖는 건축가 자신의 주택이다. 완전히 일체일 수는 없으나 건축사무소의 대표, 대학교수, 건축가가 한 몸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공간적으로 구현했다. 판교 운중동 단독주택인 `라운드 하우스`는 용지가 표고가 있고 형태는 피자 4분의 1토막 같은 모양이다. 피사체로서 집, 단독주택은 건축주의 초상화와도 같다. 건축가라는 지위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이 주어진다. 건축주와 대화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의 삶이 들여다보이는 직업이다.

중견 건축사무소에 주택은 수익이 나지 않는 장르다. 그렇다고 주택 설계를 거절하지 않는다. 한 사람 또는 가족의 삶 전체가 담기는 게 주택이다. 주택은 오로지 행복만을 추구한다. 설계하는 이도 참여 과정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경영위치`는 50여 개의 주택 설계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제주도 제주시 네거리 모서리 용지에 위치한 정 클리닉 병원(2014)은 시민에게 공간을 배려하면서도 콘크리트와 기둥과 목재 루버는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외부로 노출되는 내부를 차단한다. 1층에는 상업시설과 약국이, 2~4층에는 피부과, 치과, 외과, 대기실 등 진료 공간이 각각 마련됐다.

정 클리닉은 1층에 진입 마당과 수(水) 공간, 광장이 있고 2층에는 널찍한 홀, 3·4층에는 테라스 등 열린 공간을 곳곳에 마련돼 개방감이 크면서도 편안한 느낌이다. 3층은 건물 앞면과 뒷면에 테라스를 설계했고 4층은 테라스에 이어 돌출된 발코니 대기실이 있다. 제주 나무인 팽나무 등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로 꾸민 옥외 공간은 바깥 보행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내부의 다양한 진료·휴식 공간과 외부의 마당, 광장이 길을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설계 아이디어와 현지 시공사의 품질 능력이 컬래버레이션을 이루었다.

현무암 톤을 반영한 노출 콘크리트와 나무, 철골 구조를 조화롭게 적용하고 외부 벽면의 일정 부분을 오픈해 다양한 외관을 표현하는 등 지역 정서를 담은 건축물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김승회는 건축가로서 시대적인 의미나 사명을 느낀다. 건축은 개인이 소유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제대로 된 건축은 인간의 수명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건축은 그래서 근본적으로 공공재다. 건축가 윤리의 본질을 늘 느낀다. 건축에 대해 `내 거야` 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건축가는 공부를 계속하면서도 사회적 고민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는 모더니즘의 대표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의 직계 제자이자 그의 건축 언어를 한국으로 이식해온 김종성 건축 철학에 더해서 시대적인 재료와 기술을 더한다. 이러한 스승을 둔 김승회의 건축 언어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분당 도시형 대안 공동체 `이우학교`다.

2001년부터 점차적인 증축을 고려한 설계를 했다. 태양열 등 친환경 설비를 적용했다. 지형의 경사는 충분히 살렸다. 학교 건물 동은 모두 5개다. 중학교, 본관, 고등학교 등 건물은 2003년 1차로 완공됐다. 부대시설인 2개 동과 식당, 도서관, 지하 공연장으로 이뤄진 복합관(학생회관)은 2004년 2차로 완공됐다. 복합관 앞에 세워진 지하 1층~지상 3층의 더불어관(다목적관)은 2017년 완공됐다.

외관에서 가장 먼저 두드러진 점은 기둥이 엄청나게 가늘다는 점이다. 교사 동을 지탱하는 기둥은 7.5×15㎝ 두께의 얇은 사각 철골구조물이다. 건물 내에는 기둥이 없다. 1.8m 간격의 기둥과 8.4m 길이의 보로 짜인 옹골진 철골 구조에 있다. 옆으로 눕힌 H자형 수평 보에는 다시 V자형 `트러스`를 설치해 하중을 분산시켰다. 그러다 보니 교실 천장 높이가 3.3m로 낮다. 천장 구조와 전기 배선 등을 가리는 천장반자 없이 천장 구조를 그대로 노출해 공간감을 살렸다.

벽의 하중도 줄였다. 교실의 창가 쪽 외벽이나 복도 쪽 외벽은 유리 아니면 목재다. 교실과 복도 사이 콘크리트벽도 유난히 얇다. 특수 단열재와 방음재를 써서 보온과 소음 문제를 해소했다. 부재가 크면 형태가 압도당한다. 뼈대가 구조 자체가 되도록 했다.

`이우학교`는 건축의 용도만큼이나 설계 콘셉트가 진보적이다. 모더니즘 건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전복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수명이 길지 않았다. 미스 반데어로에의 일리노이공과대(IIT) 건축대학 건물인 크라운홀(1956)은 당대에는 혁신적이었다. 이러한 흐름이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1958)이라는 전형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건축가 김승회에게 `이우학교`가 `크라운홀`이기에, 건축의 전형이어야 할 `시그램 빌딩`의 등장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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